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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지리산의 숨은 적들 (182) 이현상의 죽음
한 달여 동안 지리산과 백운산을 공격했던 수도사단은 빨치산 1867명 사살, 1055명 생포의 전과를 올렸다. 회문산과 백아산, 조계산과 화학산 일대에 숨어든 빨치산을 뒤쫓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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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지리산의 숨은 적들 (181) 끝을 드러낸 토벌작전
겨우 17~18세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여자 아이들이 일부는 바위 틈에 앉아 있었고, 일부는 총탄에 맞아 숨져 있었다. 그 모습들이 하도 이상해 자세히 살펴봤지만 분명 앳된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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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지리산의 숨은 적들 (180) 산속에서 올린 횃불
내가 ‘백 야전전투사령부’를 이끌 때 그런 작전이 있었는지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수도사단이 벌인 ‘횃불 작전’이라는 것은 전투를 수행하는 일선 지휘관에게 일종의 금기(禁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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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지리산의 숨은 적들 (179) 막바지 추격
1952년 새해 초는 매우 추웠다. 토벌대는 작전 전에 이미 두툼한 방한복을 지급받은 상태였다. 그러나 지리산 일대를 휩쓸고 다니는 거센 눈바람과 옷 속까지 파고드는 칼끝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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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지리산의 숨은 적들 (178) 포화(砲火) 속의 사람들
토벌대와 그 총구를 피해 도망가려는 빨치산 사이에는 인간 세상의 수많은 우여곡절을 보여주는 사연이 적지 않았다. 서로 총을 겨눴지만 사람끼리의 묘한 인연은 토벌 과정에서 늘 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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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지리산의 숨은 적들 (177) 작전 중의 중장 승진
1952년 6월 육군 2군단장 시절의 백선엽 장군. 백 장군은 ‘백 야전전투사령부’의 사령관을 맡아 51년 말부터 빨치산 토벌 작전을 펼치던 중 52년 1월 중장으로 진급했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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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지리산의 숨은 적들 (175) 낯선 해방구의 모습
빨치산은 자신들이 점령한 지역을 ‘해방구’라고 불렀다. 대한민국의 영토 속에 버젓이 인공기(人共旗)를 걸어놓고 공산주의 이념과 제도를 실행했던 곳이다. 국군 8사단이 회문산 일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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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지리산의 숨은 적들 (174) 부하를 다루는 방법
부하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는 전선의 지휘관들이 늘 고민해야 하는 대목이다. 무리한 명령을 내리고 그를 수행하지 못해 쩔쩔매는 부하를 궁지로 몰아가는 지휘관은 결코 A급이라고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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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지리산의 숨은 적들 (173) 빨치산 주력을 놓치다
토벌을 펼치는 과정에서 계속 들었던 이야기지만 빨치산들은 신을 거꾸로 신는 버릇이 있다. 특히 토벌대에 바짝 쫓기는 상황에서 자주 쓰는 교란 전술의 하나였다. 신을 거꾸로 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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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지리산의 숨은 적들 (172) 토벌 사령관의 하루
전선 사령관이라는 자리는 바쁘다. 1950년 6·25전쟁이 터진 뒤 나는 줄곧 전선에서 사단과 군단을 이끌었다. 눈코 뜰 새 없이 치러지는 전쟁의 와중에서 일선 부대의 운명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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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지리산의 숨은 적들 (171) 다시 산을 오르다
우리의 작전 구역은 전주~남원~구례~순천을 잇는 선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으로 나뉘었다. 그 서쪽은 8사단이 맡고, 동쪽은 수도사단이 담당했다. 각 사단은 특징이 있었다. 최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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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지리산의 숨은 적들 (170) 대민(對民) 군기를 다시 세우다
‘백 야전전투사령부’가 1951년 말 빨치산 토벌을 위해 세운 작전계획은 빨치산이 몰려 있는 지리산 일대를 남과 북으로 나눠 압박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1기 작전의 핵심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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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지리산의 숨은 적들 (169) 2기 토벌작전 개시
도쿄의 유엔군총사령부에서 인쇄해 날라온 귀순 권고 전단이 지리산을 하얗게 덮었다. 12월 2일부터 15일까지 벌어진 1기 작전 중 지리산 전역에 뿌린 전단은 322만 장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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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지리산의 숨은 적들 (168) 어느 빨치산 가족
겨울 산은 남쪽과 북쪽 경사면의 온도 차이가 뚜렷하다. 햇볕이 제법 긴 시간 동안 내리쬐는 남면(南面)은 그렇지 않은 북면(北面)에 비해 훨씬 따뜻하다. 겨울 산의 북면은 햇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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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지리산의 숨은 적들 (167) 줄줄이 잡혀 오는 포로
겨울 지리산에 총성이 잦아지고 있었다. 토벌대의 포위망이 좁혀지면서 지리산 여기저기에서 요란한 총격전이 벌어졌고, 공중지원을 요청하는 지상부대의 통신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날아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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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지리산의 숨은 적들 (166) 미8군 사령관의 방문
기자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6·25전쟁이 터진 뒤 벌써 1년6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이미 휴전협상은 벌어지고 있었고, 38선 주변의 각 전선에서는 고지를 뺏고 빼앗기는 소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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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지리산의 숨은 적들 (165) 검은 개, 노란 개, 그리고 멧돼지
빨치산은 우리를 개로 불렀다. 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경찰을 검은 개, 군인을 노란 개로 호칭했다. 그런 반면에 우리는 빨치산을 멧돼지라고 불렀다. 개와 멧돼지, 요즘에도 가끔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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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지리산의 숨은 적들 (164) 부통령이 보낸 편지
아주 두꺼운 편지가 들어 있었다. 인촌(仁村) 김성수 선생은 당시 부통령으로, 고향이 전북 고창이었다. 지리산에서 벌어지는 토벌 작전에 부통령으로서, 또 고향 사람으로서 각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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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지리산의 숨은 적들 (163) 빨치산 소탕 ‘D데이 H아워’
1950년 11월 지급된 방한복을 입고 있는 국군 병사의 모습이다. 이듬해 11월에 펼쳐진 지리산 토벌대도 이런 방한복을 입고 빨치산과의 전투에 나섰다. 지리산 토벌대는 산에 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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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지리산의 숨은 적들 (162) 삐라 1000만 장
당시 남한 지역에서 활동했던 빨치산 숫자는 정확히 집계하기 힘들다. 그러나 추산(推算)해 보면 많게는 5만 명, 적게는 2만5000명 정도가 활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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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지리산의 숨은 적들 (161) 군대가 움직이다
지금의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그런 상황을 제대로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1951년 10월의 대한민국은 이상한 모습이었다. 지리산을 중심으로 전라도와 경상도 일원에는 또 다른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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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문화마당] 1000일의 수도-부산미술전 外
◆전시 ▶1000일의 수도-부산미술전=6·25전쟁 때 임시수도였던 부산에서 활동했던 화가 43명의 작품 70점을 전시. 종군화가였던 양달석과 손응성 등이 전쟁 참상을 담은 작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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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지리산의 숨은 적들 (160) 다시 지리산으로
1950년 9월 미군의 인천상륙작전과 아군의 낙동강 전선 반격으로 후퇴를 거듭했던 북한군의 일부가 붙잡혀 포로가 된 모습이다. 공세에 밀렸던 북한군의 일부 병력은 지리산 등 남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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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지리산의 숨은 적들 (159) 빨치산 1차 소탕
1949년 11월에 들어서면서 5사단은 대대적인 선무(宣撫) 공작을 벌였다. 지금까지 개별적으로 펼쳐오던 선무 공작의 종합판이었다. 입산해서 빨치산으로 활동을 하지만 마음속으로 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