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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24) 맥아더의 통 큰 선물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 총사령관이 1951년 3월 중순에 국군 1사단 사령부로 찾아 왔다. 지프에 앉은 맥아더 사령관(왼쪽)이 당시 1사단장이던 백선엽 장군과 악수를 하며 대화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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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23) 수도 재탈환, 중공군 역습
여기저기서 ‘펑-’ ‘펑-’ 폭발음이 들렸다. 곳곳에 매설했던 지뢰가 폭발하는 소리였다. 눈에 들어오는 전신주는 모두 쓰러져 있었다. 전깃줄은 바닥에 헝클어져 있었다. 전차(電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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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22) 서울 탈환 작전
저기 멀리 한강이 보였다. 경기도 시흥의 국군 1사단 사령부를 떠나 북상하면서 점차 내 앞으로 다가온 파란 물결이 바로 한강이었다. 이제 저곳을 넘으면 대한민국의 심장인 서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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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21) 전세 뒤집은 51년 2월 중순
미 1기병사단 소속 전차가 1951년 2월 경기도 용인 양지면에서 다리를 건너다 무게 때문에 바닥이 기울어지자 멈춰서 있다. 공병들이 다리 아래에 버팀목을 대고 구난전차가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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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20) 연합군의 영웅들
1951년 2월 경기도 양평의 지평리에서 격전을 치렀던 프랑스 대대원들이 재정비를 하던 중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미 2사단 23연대 전투단에 배속됐던 이들은 고립 상태에서 중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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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19) 서울을 탈환하라
유엔군의 거센 반격이 1951년 1월 15일 시작됐다. 미 25사단의 27연대 마이켈리스 대령이 선두에 나섰다. 1개 전차대대와 3개 포병대대 등 막강한 화력을 마이켈리스 연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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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18) 반격의 칼을 갈다
전선은 마침내 북위 37도 선까지 밀렸다. 1951년 1월의 일이다. 중공군의 3차 공세가 워낙 거셌고, 한 번 밀리기 시작한 국군과 연합군은 숨 돌릴 틈도 없이 계속 남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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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17) 떨어진 6·25의 별
월튼 워커 장군(지프 위에 올라선 사람)이 1950년 7월 낙동강 전선의 국군 1사단을 방문한 모습이다. 지프 왼쪽에 서 있는 사람이 백선 엽 당시 1사단장이다. 번쩍거리는 철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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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⑮ 밀리고 밀리는 전선
국군과 미군, 연합군을 한강 이남까지 밀어낸 중공군의 3차 공세는 1950년 12월 하순에 본격적으로 불이 붙었다. 사진은 임진강 부근까지 내려온 중공군 포병들이 12월 31일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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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⑭ 전시 사단장의 하루
중공군 2차 공세에 밀려 후퇴를 거듭하면서 마음고생이 심했던 백선엽 국군 1사단장(가운데)이 1951년 초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에 마련된 사단본부에서 참모·고문관과 작전회의를 마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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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⑫ 인디언 태형(笞刑)
인디언이 적군을 잡았을 때 가하는 형벌이 있다. 먼저, 전사(戰士)들이 두 줄로 길게 늘어선다. 그 다음 적군 포로를 그 사이로 지나가게 하고는 두 줄로 늘어선 전사들이 그를 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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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⑩ 11월 말 공격 그리고 후퇴, 후퇴
국군 1사단이 1950년 10월 평양으로 진격할 당시 백선엽 사단장(가운데)이 미 공군연락장교로 와 있던 윌리엄 메듀스 대위(오른쪽)와 작전을 논의하고 있다. 박천에서 중공군의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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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운산 전투 -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⑧ 달콤한 휴식
운산 전투 며칠 뒤인 1950년 11월 초 연예인 위문단이 평양 북쪽의 평안남도 안주군 입석에 주둔했던 국군 1사단을 찾아 공연을 하고 있다. [백선엽 장군 제공] 우리는 미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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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운산 전투 -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⑦ 드러난 중공군의 얼굴
6·25전쟁에 개입한 중공군 13병단의 병사들이 1950년 10월 말쯤 평안북도 운산에서 국군 1사단을 공격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중공군 1차 공세’로 불리는 당시 공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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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운산 전투 -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⑥ 미 8기병연대 3대대
1950년 11월 1일 새벽 1시쯤이었다. 나는 길을 재촉했다. 영변의 국군 1사단 사령부를 향해 지프를 달렸다. 밤길을 달리는 지프 뒤로 스쳐가는 바람이 차가웠다. 불안감과 초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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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운산 전투 -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⑤ 급박했던 후퇴 명령
1950년 10월 말 벌어진 운산 전투에서 중공군에 포로로 잡힌 미군의 모습이 중공군 사진사의 앵글에 담겼다. 중국이 펴낸 전사자료집에 등장하는 사진이다. 잡힌 포로들은 그해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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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석 칼럼] 한국전쟁 60돌과 한국사회
적벽대전 등 『삼국지』전투에는 해박하지만, 막상 한국전쟁의 디테일에 무신경한 이들이 적지 않다. 개전 초기 춘천 방어전투만도 그렇다. 당시 이곳의 국군 6사단은 인민군을 7일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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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운산 전투 -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④ 급박해진 후퇴
1950년 10월 31일 평안북도 운산에서 중공군 1차 공세에 직면한 국군 1사단의 백선엽 사단장(왼쪽)이 미군 10고사포단 윌리엄 헤닉 대령(앞줄 오른쪽)과 함께 걸으며 후퇴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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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운산 전투-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③ 이상한 명령들
1950년 10월 북한을 지원하기 위한 중공군 병력이 군악대의 연주 속에 압록강을 줄지어 건너고 있다. 약 30만 명의 중공군이 그해 10월 중순쯤 한반도로 잠입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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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운산 전투 -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② 미군 - 중공군 첫 교전
6·25전쟁 당시 미 8군 예비대의 6전차대대 C중대의 한 전차 위에 한국군과 미군이 함께 올라타고 작전에 나서고 있다. 이 6전차대대 C중대 소속 1개 소대 탱크 다섯 대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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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운산 전투-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① 새로운 전쟁의 시작
평양을 탈환하고 압록강 수풍댐을 향해 북진하는 국군 1사단이 1950년 10월 중순 청천강에 놓인 나무 다리를 지나고 있다. 얼마 뒤 1사단은 영변 북쪽 운산에 서 몰래 들어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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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칼럼] 맛과 멋, 친구가 있는 프랑스 부르고뉴 골프장
파리에서 남동쪽으로 309km 지점에 위치한 디종은 1179년부터 1477년까지 부르고뉴 공국의 수도였다. 디종 중심가에는 중세의 저택과 교회가 많이 남아 당시 번영했던 공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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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납북자 가족, 1인당 58원 손해배상 항소
국가가 국민 보호의 직무를 유기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패소한 한국전쟁 납북자 가족협의회가 5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원실에 항소장을 접수시켰다. 이미일씨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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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어린이 821명 한강 헤엄쳐 건너기
'서울 어린이 한강 헤엄쳐 건너기' 행사가 18일 서울 한강에서 열렸다. 덕수초등학교 학생 430명을 비롯한 어린이 821명이 이날 한강 잠실지구를 출발해 뚝섬까지 1100m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