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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탁의 인문지리기행] “모기” “빈대” 으르렁댄 노·소론, 껍데기 유학의 폐단
━ 논산 황산서원과 이념 갈등 김정탁 노장사상가 오늘날 우리나라 정치지형은 지역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역 요인 중에서도 영남과 호남이 차지하는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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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탁의 인문지리기행] 도그마로 변질된 노론, 물의 이치를 거스르다
━ 속리산 화양계곡과 송시열 김정탁 노장사상가 속리산 한 자락 물길인 화양(華陽)계곡은 말 그대로 아름답다. 이름에 빛(華)이 있으니 흐르는 물과 흰 바위가 빛을 받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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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종친 파평 윤씨와 얽힌 은진 송씨…병자호란 350년 갈등 풀다 [e즐펀한 토크]
━ 송시열, 윤선거를 사문난적으로 몰아 1637년 1월 조선 인조는 삼전도(서울 송파구)에서 청 태종 홍타이지에게 삼배 구고두(三拜 九叩頭)를 했다. 삼배 구고두란 청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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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 높이 3m, 구례 화엄사 17세기 목조삼신불 국보 된다
28일 문화재청이 국보로 지정 예고한 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 왼쪽부터 석가여래불-비로자나불-노사나불 순서다. 화려한 연꽃 대좌(부처가 앉는 자리)와 팔각형 목조대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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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언택트' 여행 계획한다면…경기 명소 4곳부터 둘러봐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해 요즘은 언택트(비대면, Un+Contact) 여행이 대세다. 답답한 실내 대신 사방으로 탁 트인 공간을 거닐며 힐링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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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서인이지만 정적 남인의 딸과 혼인한 송준길
━ [더,오래]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82) 드론으로 촬영한 동춘당 종택 주변. 앞이 동춘당이고 그 뒤가 사당인 ‘송씨별묘’이다. [사진 백종하 사진작가] 동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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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가 있는 아침] (17) 간밤에 부던 바람
유자효 시인 간밤에 부던 바람 선우협 (1588-1653) 간밤에 부던 바람 만정도화(滿庭桃花) 다 지거다 아이는 비를 들고 쓸으려 하는구나 낙환들 꽃이 아니랴 쓸어 무삼 하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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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의 보스와 참모의 관계학(34) 효종과 송시열] 왕의 명령 아닌 자기 필요에 따라 거취 정해
정통성 시비에 휘말린 효종 정권에 출사 거부...남인의 공격 받자 효종과의 독대 내용 공개 송시열은 대학자로 존경받았지만 당쟁을 심화시키고 반대파를 탄압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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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운의 역사정치] ‘21세기 예송논쟁’이 된 건국절 논란
━ 유성운의 역사정치⑧ 우리 역사에서 17세기는 ‘예학(禮學)의 시대’라고 일컬어집니다. 이전만 해도 느슨하게 적용했던 장자 우대, 남녀 차별, 적서 차별 등이 17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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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관 교수의 조선 리더십 충청도 기행 ⑩ 송시열의 남간정사와 화양동 계곡
암서재는 송시열이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매진했던 아담한 건물로 충북 괴산군 화양계곡에 지어졌다. [사진= 이영관 교수] 조선왕조를 빛낸 위인들이 충청도 땅에서 일궈낸 역사적 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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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관 교수의 조선 리더십 충청도 기행 ⑨ 우암의 정치
대전시 동구 가양동에 있는 남간정사(南澗精舍). 송시열이 제자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지은 누각식 건물로 산골짜기에서 흐르는 계곡물이 건물 아래로 흘러내리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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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관 교수의 조선 리더십 충청도 기행 ⑧ 우암 송시열
송시열[宋時烈, 1607~1689] 우암(尤庵) 송시열은 1607년 충청도 옥천군의 구룡촌 외가에서 태어났다. 27세 때 과거시험에 합격하면서 주목을 받아 봉림대군의 사부가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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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의 발자취 따라 오르면 절경이 발 아래에
중앙일보 천안·아산은 휴가철을 맞아 시원한 산행을 계획했습니다. 이번에는 지역을 조금 벗어나 충북 괴산을 다녀왔습니다. 조선시대 성리학자 우암 송시열의 발자취가 남아 있고 화양구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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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욕보다 기득권’ 사대부들 安民 내세워 양병론을 꺾다
요동벌판 : 효종은 심양에서 인질 생활을 하던 경험을 통해 북벌을 가능한 목표라고 여겼으나 사대부들은 불가능한 꿈으로 여기고 반대했다. 사진가 권태균 국란을 겪은 임금들 효종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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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택의 펜화기행] 괴산 화양구곡 암서재
속리산 국립공원 내 화양구곡에서 가장 아름다운 금사담(金沙潭)의 높은 바위 위에 자리잡은 암서재는 우암 송시열(1607~1689)이 노년(1666년)에 지은 서재입니다. 전면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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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독대
대통령과 독대(獨對)했다는 사실만으로 목에 힘을 주는 사람들이 있을 만큼 '청와대 독대' 는 흔한 일이 아니다. 청와대 비서관이라고 다 대통령과 독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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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식 장편역사소설 '일본여도' 화제
역사는 '기록' 이자 '여백' .각종 사료가 기록이라면 문자로 확인 안되는 부분이 여백이다. 많은 사학자와 문학가들은 이 기록과 여백을 넘나들며 역사를 메운다. 우리와 일본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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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 오토드라이브 3選-중원미륵사지.괴산화양구곡.태안반도
가을산은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이 시기를 놓치면 단풍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 어렵다.노란색으로 치장한 떡갈나무. 도토리나무,붉게 물든 단풍나무와 물푸레나무가 온 산하를 불태운다.빠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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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對-왕과 신하가 단둘이 만나던데서 유래
(犬)이 들어있는 한자는 모두 짐승이나 짐승의 성질과 관계가있다고 했다. 狐(여우 호),狗(개 구),狂(미칠 광),猛(사나울 맹)등….독(獨)은「蜀(촉.해바라기 벌레)과 같은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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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문화유적 무분별한 개발정책으로 훼손되는일 많아
[大田=金芳鉉기자]대전의 각종 문화유적들이 무분별한 개발정책으로 파괴되거나 훼손되는 일이 많아 이에 대한 대책이 요구된다. 대전목원대 이왕기(李王基)교수는 최근 발표한 「대전의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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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대쪽정신」 그리워|소설『우암 송시열』펴낸 홍경호 교수
『사회가 혼탁할수록 대쪽같던 옛 선비들이 그리워집니다. 정심과 성의로 삶의 길을 가면서 의리를 위해선 일신을 초개같이 버릴 줄 알았던 사대부의 전형을 저는 우암 송시열에게서 찾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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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인물소사
◇송시열 = 1689년 사망. 조선의 학자·정치가. 호는 우암. 노론의 영수. 1633년 생원시에 장원급제하여 경릉참봉이 되었으나 곧 사직, 1635년 봉림대군(효종)의 사부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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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송시열의 곧은 정치 산실 경현당
학문에서 얻은 바를 실천에 옮기고 죽음에 이르러서도 진리를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거룩한 일인가. 우리는 그 모습을 우암 송시열에게서 보는 자랑스러움을 누린다. 그는 학문과 정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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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벌운동|숭명배청
우암 송시열 (1607∼1689년)의 3백주기를 맞아 우암사상의 현대적 의의를 조명하는 학술회의가 사문학회(회장 이병주) 주최로 23일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다. 이번 학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