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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일제, ‘특별지원병’ 구실로 대학생들 침략전쟁에 강제 동원
1944년 1월 20일은 육군성 영(令) 제48호 ‘육군특별지원병 임시채용규칙’에 의해 이 땅의 청년학도들이 학병으로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강제 동원된 날이다. 사진은 학병 출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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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첫 미국 이민선 호놀룰루 도착 … 고된 노동에도 독립운동 헌금
이민선이 들어오는 하와이 호놀룰루 부둣가에 늘어서 태극기를 흔들며 새로 오는 이들을 반기는 초기 이민자들의 모습. (『100년을 울린 겔릭호의 고동소리』, 현실문화연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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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좌·우파가 서로 자기 입맛대로 해석한 ‘애치슨 라인’
1949년 1월부터 53년 1월까지 트루먼 행정부의 국무장관을 지낸 애치슨(1893~1971). 한국을 미국의 방위선에서 제외한 ‘애치슨 라인’이 북한의 남침을 유발한 것으로 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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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굳세어라 금순아 …” 중국군 개입으로 빚어진 1·4후퇴 비극
1·4후퇴 때 자유를 찾아 눈 덮인 산야에 끝없이 이어진 남부여대(男負女戴)의 피란민 행렬. 1951년 1월 8일 강릉 인근에서 찍은 사진이다.1950년 11월 21일 미 제7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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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단발령에 전국적 반발 … 일인 소유 이발소·모자가게만 번창
양복 차림에 모자를 눌러쓴 체두관(剃頭官)이 가위를 들고 상투를 자르는 모습(『을사늑약 100년, 풀어야 할 매듭』·독립기념관). 단발령은 명성황후 시해로 흉흉해진 민심을 자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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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을미사변 목격했던 조선 최초의 서양인 건축가 사바친
조선에서 활약한 최초의 서양인 건축가 사바친(1860~1921). 을사늑약이 체결된 치욕의 장소 경운궁(현 덕수궁) 내 중명전과 독립문의 설계자다.[아름터 건축사사무소장 김석순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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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개화파와 사사건건 충돌했던 묄렌도르프
조복을 입고 관대를 두른 조선 최초 푸른 눈의 고문관 묄렌도르프(P. G. von Mllendorff, 穆麟德, 1848~1901). 그가 조선옷을 입은 까닭은 백성들이 그를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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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25년 걸려 집필한 『토지』의 작가 박경리 탄생
한국 문학사에 전무후무한 기념비로 우뚝 설 21권짜리 대하소설 『토지』를 남긴 작가 박경리가 생전에 강원도 원주시 원구동 자택에서 글 쓰던 모습.오늘은 한 해 전 타계한 국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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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군국주의 작가 미시마, “천황폐하 만세” 외치며 할복 자살
미시마 유키오(1925~1970)가 육상자위대 건물 2층 발코니에서 자위대원들을 향해 미일안보조약 개정과 평화헌법 폐기를 요구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1970년 11월 25일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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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고1을 위한 제언 - 상위 1%를 목표로
박종수 청솔학원 CS교육컨설팅 수석컨설턴트 정부의 대입자율화 3단계 방침에 맞춰 입시제도도 변화를 거듭할 전망이다. 올해 입시의 경우 수능등급제 폐지가 골자라면 2010∼2011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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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최초의 평민 의병장 ‘태백산 호랑이’ 신돌석
1907년 2월 촬영한 일본군 ‘토벌대’의 모습(한일병합사 : 사진으로 보는 굴욕과 저항의 근대사눈빛). 신돌석 의병부대는 이들 토벌대를 선제공격하는 ‘반(反)토벌작전’을 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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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을사늑약에 끝까지 반대한 ‘책임정치가’ 한규설
한규설은 지금의 서울 명동 부근 조동(현재 장교동)에 살았기에 조동대감으로 불렸다.한규설(1848~1930)은 갑신정변 때 개화파의 손에 목숨을 잃은 한규직의 동생이다. “한규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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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일제의 ‘내선일체’ 선전에 동원된 비운의 여인 이방자
마사코는 1920년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였던 이은(李垠·오른쪽)과 백년가약을 맺고 남편의 성을 따라 이방자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1901년 11월 4일 일본 황족으로 태어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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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독립운동의 성지 서대문 형무소…72가지 잔혹한 고문 악명
서대문 형무소 구내 재소자 운동장(서대문형무소, 열화당, 2008). 사진 가운데 원형 감시탑을 중심으로 펼쳐진 운동공간은 미셸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설파한 규율과 감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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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제국주의 침략의 선봉 이토 히로부미 심장 멈추다
통감 시절(1906~1909) 한복을 차려입은 이토 히로부미(뒷줄 가운데). 부인 이토 우메코(伊藤梅子앞줄 왼쪽 둘째)와 을사오적 중 한 사람인 이지용(뒷줄 오른쪽)의 모습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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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외세 업은 정변의 한계, 김옥균의 ‘예정된 비극’
김옥균은 일본 메이지유신을 모델로 한 ‘위로부터의 개혁’을 꿈꾸었다(사진=도쿄 한국연구원 소장).“일본이 동방의 영국 노릇을 하려 하니 우리는 우리나라를 아시아의 프랑스로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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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4·19 이후 ‘이승만 깎아내리기’ 90년대 들어 공적 재평가 활기
“지금 우리나라를 새로이 건설하는 데 있어서 아까 김구 주석의 말씀대로 튼튼한 반석 위에다 세우려는 것입니다.” 이승만이 1945년 11월 28일 김구와 함께 정동예배당에서 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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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해방은 비극의 원천이면서 민족사의 획기적 전환점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을 나는 까마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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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러일전쟁 이긴 일본 찬양했는데 식민지 조선은 ‘타고르 짝사랑’
오늘은 라빈드라나트 타고르(1861~1941년)가 긴 잠에 든 날이다. 1912년 영문시집 『기탄잘리(Gitanzali)』가 영국에서 나온 지 7개월 만에 그는 아시아인으로는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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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청일전쟁 방아쇠 당긴 일본, 10시간 만에 유린당한 경복궁
1894년 7월 22일 밤 용산에 주둔한 일본군은 출동 명령이 떨어지기만 기다렸다. 작전 목표는 경복궁을 점령하고 국왕을 포로로 삼는 것이었다. 세간에 알려진 바와 달리 이 사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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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러시아 차르 흉내내려던 고종, 국민국가 수립 여망 저버리다
한 세기 전 시대적 과제는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을 막고 근대 국민국가를 세우는 것이었다. 1897년 10월부터 1910년 8월까지 약 13년간 존속한 대한제국 시기는 국민국가 수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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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차관 도입 자립경제 이루자”…경제개발 전략의 ‘원조’ 어윤중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사람이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 인간이 사물을 보는 인식의 폭과 깊이는 그가 받은 교육의 내용과 견문한 세상의 크기에 비례한다. 어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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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한국 위하는 범위 내에서 친일” 내선일체 옹호한 윤치호의 변명
윤치호(1864~1945)는 17세 나던 1881년 최초의 일본 유학생이 되었다. 1883년 5월, 2년 남짓한 그의 유학생활은 막을 내렸다. 그때 영어를 할 줄 아는 이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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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미래를 준비하라” 부친 가르침…해군 창설로 답한 손원일 제독
올해는 ‘해군의 아버지’ 손원일(1909~1980) 제독 탄생 100주년이다. 중국 지린(吉林)성 문광중학을 졸업할 무렵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을 지낸 부친 손정도 목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