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406)우방 참전부대(7)

    (2) 한국전쟁기간에 의료부대를 보낸 5개국 중에서 「스웨덴」적십자병원부대의 활동은 5개국 중 가장 두드러졌다. 「스웨덴」정부는 한국전이 일어나자 곧 의료지원부대를 파견할 것을 결

    중앙일보

    1972.12.15 00:00

  • 남-북 관계 새로운 장에|조절위 공동위원장 제2차 회의 의의

    남북한 관계는 4일에 발표된 남-북 조절위원회의 2차 회의 결과로 또 하나의 새로운 장으로 접어들었다. 남-북 관계에서 7·4성명은 하나의 선언적 의미가 있었다고 하면 4일의 두

    중앙일보

    1972.11.06 00:00

  • 을밀대 구경…「쇼핑」도

    【평양=대한민국 신문통신방송 공동취재단】평양에 간 이후락 남-북 조절위 공동위원장 일행이 2박3일째가 되는 4일 아침 평양도 서울과 같이 20m 앞이 안 보이는 짙은 안개가 끼였다

    중앙일보

    1972.11.04 00:00

  • 평양거리 차중 관광

    【평양=대한민국 신문통신방송 공동취재단】이후락 남-북 조절위 공동위원장 일행은 평양에서의 첫 밤을 지내고 3일 상오 이 위원장과 보좌 단 등 5명은 김일성 방문, 기자와 수행원은

    중앙일보

    1972.11.03 00:00

  • "기사도 조절해야"

    평양시내에 자리잡은 만수대 의사당의 회의장은 약 40평 규모의 넓은「홀」로 바닥은 엷은 녹색「카피트」가 깔려있었고 엷은 황색의 대형「테이블」이「홀」가운데 놓여 있었다. 회의는 이

    중앙일보

    1972.11.03 00:00

  • 양측, 토의안 제시만

    【대한민국신문통신공동취재단】24일 평양에서 열린 제3차 남북적본회담은 상오의 공개회의에 이어 하오에 비공개회의를 열었으나 남북적은 각기 의제 제1항인 이산가족의 주소와 생사를 확인

    중앙일보

    1972.10.25 00:00

  • 달라진 평양시민표정…손 흔들기도

    【평양=대한민국 신문통신공동취재단】한적대표단 54명은 대동강이 내려다보이는 평양여관에서 첫 밤을 보냈다. 23일 상오 판문점을 출발한 일행은 이날 하오2시 평양에 도착, 김태희 북

    중앙일보

    1972.10.24 00:00

  • 한결 차분해진 입북환송|남북적 회담 대표단 두 번째 평양 가던 날

    남북 이산가족 찾기를 위한 한적 대표단 일행 54명이 23일 상오 판문점을 통해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 두 번째 평양 길에 올랐다. 이날 판문점에는 지난 8월29일 첫 번째

    중앙일보

    1972.10.23 00:00

  • 한적 대표단 평양도착

    【평양=대한민국 신문통신공동취재단】여기는 평양, 온화한 가을 날씨다. 23일 상오10시 판문점을 출발한 대한적십자사 대표단 일행은 이날 하오2시 본 평양시내 대동강이 내려다보이는

    중앙일보

    1972.10.23 00:00

  • 한적 대표단 숙소 바뀌어

    판문점에 나온 북한기자들은 이날 한역대표단 일행의 숙소가 지난번의 문수리 초대소에서 대동강건너 평양여관(6층 건물)으로 바꿔졌다고 전했다. 회담장은 1차 때와 같이 대동강회관을 쓴

    중앙일보

    1972.10.23 00:00

  • (585) 북간도(5)-제28화-이지택

    내 나이 15세. 평양 광성 학교 고등과에 다니던 나는 우선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학교를 찾아 나섰다. 그 당시 용정에는 내가 다닐 만한 학교가 없고 새마을(신촌)에 서당 비슷한

    중앙일보

    1972.10.17 00:00

  • 북한, 남북교류에 대비 평양이남에 공장건설

    【평양18일AFP합동】북한의 김일성이 남한과의 대화개시를 얼마만큼 중요시하는지를 북한에 체류해 보면 곧 알 수 있다. 이에 대한 첫째의 시사는 판문점에서 북으로 20분이면 갈 수

    중앙일보

    1972.09.19 00:00

  • (562)경·평 축구전(7)최일

    3차 전이 벌어진 33년4월10일의 그 날도 좀 차가운 봄바람이 강하게 불었다고 기억된다. 평양군은 2차 전까지 1무1패로 지고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지 3차 전만은 꼭 이겨

    중앙일보

    1972.09.19 00:00

  • 북적 대표들 서울의 4박5일|본사 기자들이 보고들은 그 전부 방담

    L=27년만에 서울 땅을 밟은 북의 54명의 4박5일을 쫓느라 진이 빠진 모습들이군. 4박5일 집에 못 들어간 사람도 있다지? (웃음) 남북이 취재보도 태도에는 큰 차이가 있었지만

    중앙일보

    1972.09.18 00:00

  • 남·북 생활의 단층을 깊었다|직접 대했던 이들이 말하는 북의 사람

    『북의 일행』54명이 서울에 머무른 지 4박5일-. 먹고 자고 보고 말하면서 그들이 남긴 일거일동은 분단 27년이 빚은 남북생활의 거리를 역력히 드러낸 것이었다. 숙소에서, 나들이

    중앙일보

    1972.09.18 00:00

  • (560) | 경·평 축구전 (5)|최일

    경성군의 「멤버」는 바로 전회에 밝혔거니와 준비 위원회 구성 (1933년3월28일)과 정식 창단 (33년5월11일) 사이인 4월6일부터 10일 사이에 평양군은 창단 준비 중인 경

    중앙일보

    1972.09.16 00:00

  • 북적 대표들 서울 97시간의 결산|드러난 북의 본질…성급한 기대에 찬물

    27년만의 나들이 96시간-. 남녁의 바람을 쐰 북적 대표들의 숨가쁜 서울 4박5일은 끝났다. 가족 찾기 남북 적십자 회담 제2차 서울 본 회담에 참석한 북적 대표단 일행 54명이

    중앙일보

    1972.09.16 00:00

  • 북적 대표단 서울 떠나|16일 상오 11시 「자유의 집」 통과

    남북적십자 제2차 본 회담에 참석키 위해 지난 12일 서울에 왔던 북적 대표단 일행 54명은 4박5일, 97시간의 서울 일정을 모두 마치고 16일 상오 11시5분 판문점 자유의 집

    중앙일보

    1972.09.16 00:00

  • 긴장 풀고…서울 나들이|북적 대표들 입경 4일째

    서울에 머무른지 4일째를 맞은 북적 대표단 일행은 15일 상오 10시20분 예정보다 늦게 서울 시내 관광에 나서 우리 생활을 직접 살피고 느끼는 기회를 가졌다. 합의 문서가 극적으

    중앙일보

    1972.09.15 00:00

  • "암, 내 죽기 전에 꼭 돌아올 거야" 북의 아들 기다리는 노모의 집념

    빨깐 「칸나」 꽃이 비에 젖어 후줄근한 저녁나절이었다. 나는 가슴이 메어지는 것 같은 심정에 뭐라 할말을 잃었다. 뜻밖에 우리 집을 방문하신 옛 살던 마을의 할머니가 묻는 말씀에

    중앙일보

    1972.09.14 00:00

  • 남북적 2차 본 회담 개최|13일 상오 10시 조선호텔서

    13일 상오 10시22분 남북 적십자 제2차 본 회담이 서울 시내 조선 「호텔」인 「그랜드·볼룸」에서 열렸다. 한적 이범석 수석 대표를 비롯한 한적 대표 및 자문 위원과 북적 김태

    중앙일보

    1972.09.13 00:00

  • 가라앉은 분위기…재회 약속도 미루고|남북적-서울 본 회담장 안팎

    4반세기만에 서울에서는 처음으로 북의 공식 사절을 맞아 대화가 나누어졌다. 13일 남북 이산 가족 찾기를 위한 서울 회담은 아담하게 단장된 조선 「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려

    중앙일보

    1972.09.13 00:00

  • "저것이 삼각산 아닙니까"

    『여러분의 편안한 여행을 돕기 위한 안내원입니다. 서울까지는 약1시간30분 걸립니다.』북한 기자단을 태운 서울 영5-7532호 유신 고속관광 「버스」가 12일 상오10시47분 서울

    중앙일보

    1972.09.12 00:00

  • (2)산·강·길·도시|본사 이광표 특파원 평양 왕래기

    산천은 여구했고 비목도 다를 것이 없었다. 「27년의 세월」에 가렸던 산하가 눈앞에 다가온다. 8월29일 10시40분. 판문점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자 펼쳐지는 풍경. 우거

    중앙일보

    1972.09.05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