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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122) 서울 서대문갑 열린우리당 우상호 후보
▶ 우상호 상세정보 보기“탄핵소추의 현장에서 의원들이 끌려나가고 짓밟힐 때 80년대를 떠올렸습니다. 동료들이 감옥에 가고, 분신하고, 최루탄에 맞아 쓰러지던 그 때 상황과 다를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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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항쟁'때 최루탄에 희생 이한열 기념관 생긴다
1987년 '6월 항쟁'때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숨진 연세대생 이한열(당시 경영학과 2학년)씨 기념관이 4일 착공됐다. 부지는 91년 국가배상금으로 산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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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빈 칼럼] 학교에 스승이 없다?
지난주 서울대 동양사 세미나실에서 작지만 의미 있는 행사가 있었다. 서울대 동양사학과에 재직했던 교수 네 분의 사진을 모시는 일종의 제막식이었다. 작고한 동빈 김상기.민두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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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절 집회 '비디오 전쟁' 벌어져
노동절인 1일 오후 민주노총이 서울 대학로와 종로 일대에서 개최한 노동절 대회에서 경찰과 민주노총간에 수십대의 카메라가 동원된 '카메라 전쟁' 이 벌어졌다. 인터넷에서도 양측이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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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경찰청장의 '책임 불감증'
1989년 5월 부산 동의대 사태. 학교건물 점거 학생들을 진압하던 경찰관 6명이 화염병에 불타 순직한 사건이다. 당시 "학생이 죽으면 열사(烈士)고, 경찰이 죽으면 뭐냐" 던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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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접속] "국회앞 천막농성 해산"
국회 행정자치위가 17일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법안' 을 통과시킴에 따라 1년 넘게 계속되던 민족민주열사유가족협의회(유가협)의 국회 앞 천막농성이 끝나게 됐다. 이 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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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비평' 32년 어떤 기록있나
통권 1백호 가운데 가장 많이 찍은 것은 88년 봄 복간호 (통권 59호) 로 2만7천여부가 발간됐다. 한 호에 최다 편수를 발표한 시인은 고은씨로 88년 가을호 (61호)에 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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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당시 제작 『노동해방도』등 전시
민중미술이 어떻게 민주화 투쟁에 동참하였는지를 다시 되새기게 해주는 기념비적 성격의 전시회가 열려 관심을 모은다. 민족미술협의회 주최로 11∼21일 그림마당 민(734-9662)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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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숙여사 88년 망월동묘지 극비 참배/월간중앙 10월호서 공개
노태우대통령의 부인 김옥숙여사가 광주시 망월동 묘역의 「고 이한열열사의 묘」에 헌화·참배 한뒤 잠시 눈을 감은채 묵념하고 있다. 『월간중앙』 취재팀은 지난 88년 2월25일 노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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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소식 듣고 참석자들 격앙/국민대회·출정식 이모저모
◎폭력투쟁 구호일자 대부분 눈살/이한열군 모친 광주로 급한 발길 ○…29일 오후 4시10분쯤 교내 도서관앞 민주광장에서 출정식을 갖던 연세대생 1천여명은 전남대 여학생이 분신자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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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ㆍ김규식선생 포함 북한 「조국통일상」 발표
【서울=내외】 북한은 15일 「중앙인민위 정령」을 발표,제1차 내각 당시 부수상을 역임(48년 9월∼51년 1월)하고 6ㆍ25동란중 사망한 김책을 비롯,모두 1백12명에게 최근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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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가신 님들이여”(촛불)
『먼저 가신 님들이여/나의 딸ㆍ아들보다 나이어린/앞날이 구만리같은 이들이여.』 10일 오후2시30분쯤 성균관대 금잔디광장에서 열린 「민자당일당독재분쇄와 민중기본권쟁취 국민연합」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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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상처」치유 어디까지 왔나|「5·18」 10주기 맞아 되돌아 본 우여곡절과 미해결의 장|「폭도난동」에서 「민주화운동」으로
80년5월 피로 얼룩졌던 「광주의 봄」은 10년이 지난 오늘 푸른 생기를 되찾았다. 폭도들의 난동으로 매도됐던 그 날의 함성이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규정되기까지 8년, 그리고도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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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사건·사고6
5공을 마감하고 6공을 등장시킨 동력은「6월 항쟁」이었고 그 불씨는 서울대생 박종철군(당시21·언어3) 이었다. 87년l월15일자 중앙일보 보도로 세상에 알려진 그의 희생은 희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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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몸부림」「분단고통」그린 두전시|최민화씨 서울전과 송창씨 전주초대전
민주화와 분단극복을 위한 80년대 미술운동에 앞장서왔던 두젊은 작가가 스스로의 전도를가늠해보기 위한 개인전을 갖는다. 지난해 고이한열군의 장례식때「그대 뜬눈으로(부제 이한열열사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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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열군 재정신청 조속처리요구 성명
연세 민주동문회 등 고 이한열열사추모사업회(회장 오충일목사)와 연세민주동문회는 4일 오전 「이 열사의 1주기를 맞이하는 우리의 입장」이라는 성명을 발표, 『서울고등법원은 이한열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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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열군 1주기행사
연세대총학생회 (회장 정명수) 는 7일부터 10일까지를「6월 민주화투쟁계승및 이한열열사 1주기추모기간」으로 정하고 이 기간중 이한열열사추모합창발표회와 추모심포지엄, 제1회 이한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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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기 묻힌 광주 5·18 망월동묘역|망월동비문엔 절규의시 가득
『광주여, 무등산이여, 민주의 활화산이여!』 광주망월동, 1백26기의 광주항쟁희생 영령들이 묻힌 묘지는 이제 「민주의성지」로 뚜렷이 자리잡았다. 전국의 대학생·시민들이 참배의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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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열군 추모상건립
지난해 6월사태때 학내시위에 참가했다 경찰의 최루탄을 맞고숨진 고 이한열군(당시 20·연대경영2)의대리석상이 오는 7월4일1주기에 연세대 구내에 세워져 제막된다. 연세대의 대학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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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의차원 넘어 "정치투쟁" 으로
대우조선 이석규씨 (21)사망사건은 국민운동본부를 비롯한 재야와 노동운동단체들이 깊숙이 개입하며 기업과 근로자간 임금인상등 노동쟁의 차원을 넘어 「대중정치투쟁」의 양상으로 급격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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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오라 민주여"
민주쟁취를 다짐하는 「민주시민 대동제」가 한국여성단체연합·민요연구회 공동주관으로 11일 하오6시 명동성당 성모마당에서 열렸다. ○…6·10 명동성당 농성장이기도 했던 성모마당은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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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앞시위 강제해산35명만 연행했다 훈방
연세대에서 이한열군의 유해를 뒤따른 추모행렬은 9일 정오쯤 1백만명 (국민운동본부추산)을 헤아릴 정도로 불어나 시청앞광장과 을지로·태평로쪽 도로를 발디딜틈조차 없이 메웠고 즉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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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추모인파 10여만|일부지역 파출소습격 등 격렬시위
【광주=임시취재만】1백만에 가까운 장례행렬의 애도속에 서울을 떠난 이한열군의 유해는 광주도심을 메운 10여만 인파의 추모속에 광주에 도착, 망월동 「5월의 묘역」에 안장됐다.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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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등 35개대서 이한열군 추모집회
8일 전국 5개대학에서 4천7백여명의 학생들이 이한열군·추모집회를 갖고 일부대학에서는 시위를 벌였다. 부산대·동아대등 부산시내 10개 대학생 3천여명은 8일 하오4시30분쯤 부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