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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서울 수복(7)|부역자 처리(1)|6·25 20주 3천 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전쟁3년
서울수복과 정부환도를 기뻐할 사이도 없이 제일 먼저 심각하게 고개를 쳐든 것이 소위 도강파와 잔류파와의 대립이었다. 물론 도강파란 한강을 넘어 남으로 피난 갔던 사람들이고, 잔류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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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시가전 |서울 수복 (3)|6·25 20주…3천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 전쟁 3년
9월25일 저녁에 적의 서울 방어 주저 항선은 무너졌다. 미 제5해병 연대와 한국 해병대는 격전 끝에 연희고지 일대의 「서부 방벽」을 돌파했고 미7사단 32연대와 한국군 17연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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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낙동강아 잘 있거라(7)|북괴군의 참상 (하)|6·25 20주…3천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 전쟁 3년
북괴가 낙동강의 마지막 결전에 투입한 총 병력은 13개 사단의 9만8천명이었는데 8군의 총 반격을 받고 살아서 38선을 도로 넘어간 자는 2만5천 내지 3만명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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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낙동강아 잘있거라(5)
(하) 괴뢰군이 38선을 넘어 낙동강 교두보 일대에 도달하여 공격을 개시하기까지는 약 한 달이 걸렸다. 즉 수도서울은 3일만에, 대전은 20일만에 각각 점령했지만 그들이 낙동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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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6.25」20주…3천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다큐멘터리」한국전쟁 3년|학도 의용병(7)|학생 2등병(1)
정부가 애국심에 불타는 학도의 용병들을 소홀히 대우해서 좌절감을 갖게 한 것은 실책이었다. 전력을 총동원하는데 있어, 이들 학도의 힘을 십분 발휘케 못했다는 것은 국가적인 큰 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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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학도 의용병(5)
(2) 71명의 3사단 학도의용군 중대원 중 전사 48, 부상 13, 포로 10명으로 중대 전원이 거의 희생된 포항여중 전투이야기를 계속 들어보겠다. 다행히 적 포로가 됐던 1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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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학도의용병(4)
(1) 국군 제3사단 직할 「학도의용군 중대」는 중대장부터 말단대원에 이르기까지 전원이 학생으로 편성된 부대였다. 다른 학도의용군 부대는 대개 기간요원은 현역 장교로 충당됐는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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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학생의용병(2)
(상) 학생들이 단일부대로 큰 전투에 참가하여 많은 희생을 낸 것이 장사동 상륙작전이었다. 인천상륙을 위장하기 위한 양동작전의 일환으로서 동해안의 장사동에서 벌인 이 작전에는 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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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6·25 20주…3천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역은 다큐멘터리 한국전쟁 3년|낙동강 공방전(25)|영천회전(3)
1주일에 걸친 영천회전에서는 적 제15사단 전부와 8사단 일부를 완전히 섬멸했다. 특히 적 제15사단은 분대장 급 이상이 모두 중공군 출신의 정예부대로서 8월 공세 때에는 미제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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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낙동강교두보의 운명을 건 영천회전에서 아군이 대승한 것은 지휘관들의 적절한 작전지도와 장병들의 용전분투 때문이지만 또한 운도 좋았다. 때로는 전투에서 우연한 일들이 승패를 좌우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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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16)6·25 20주 3천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전쟁 3년
대구 사수(2) 대구 북방의 다부동 공방전은 몇 번 아슬아슬한 고비가 있었지만 8월18일에 그 첫 번째의 고비를 겪게 되었다. 이날 적15사단은 유학산으로, 13사단은 다부동 북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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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6.25」20주… 3천 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한국전쟁 3년|낙동강 공방전(15)|대구사수①
북괴군이 낙동강교두보에 대해 8월과 9월 두 차례의 대 공격을 전개할 때 어디다 주공을 두었느냐에 대해서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주공 없이 전 전선에 걸쳐 동시 포위공격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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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낙동강 공방전(9)|동부전선(6)|「6·25」20주…3천 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한국전쟁3년|「한청」으로 유격대 조직
동부태백산지구는 지형상「게릴라」가 준동하기엔 안성맞춤인 곳이다. 북괴는 6·25전에도 도합 10차에 걸쳐 주로 남한출신의 유격대를 남파했는데 본격적인 남침 때에는 오진우좌(현 북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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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조국 장편으로 다루고 싶어
『분단된 나라에 대해 어떤 방법으로든지 언급해야할 의무를 느끼고, 금년에는 꼭 그 의무를 이행하려고 합니다. 지금까지는 단편을 주로 써왔으나 이 문제는 장편으로 다루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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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낙동강 공방전(6)|「6·25」20주…3천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한국전쟁3년|동부전선(3)미군 탄약 훔쳐 싸우기도
8월16일 장사동에서 구룡포까지 해상으로 철수한 제3사단은 숨쉴 사이도 없이 17일에 포항시방어전에 다시 투입되었다. 포항이 적수 중에 영영 들어가게 되면 낙동강교두보에 대한 공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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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혜진(연극배우)
70년대부터 연극계는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극단 「실험극장」이 10주년을 맞았고 몇몇 공연들이 성공을 거두었다. 또 새해에는 「드라머·센터」가 「레퍼터리·시스템」으로 연극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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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6·25」20주 3천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전쟁 3년|낙동각 공방전(5)
「8월공세」전개와 함께 태백산중을 잠진중이던 북괴 제12사단은 11일에 목표지점인 포항역에 진입했다. 이로써 한국전쟁중 가장 치열한 공방전의 하나로 꼽히는 2개월8일간에 걸친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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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에는 나의 설계와 소망|이희호(여성문제연구회장)
『직업여성의 문제, 그중에서도 근로기준법의 손이 닿지않는 소규모 가내공업에 종사하는 저임금 근로여성문제를 71년에 집중적으로 다루어 보겠읍니다. 너무 어린나이, 너무 낮은 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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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극작가 유치진씨
새로운 각오, 새로운 의욕으로 맞은 71년 문화계는 과연 어떤 움직임을 보여줄 것인가? 여기 71년 문화계를 리드해갈 각 분야의 의욕에 찬 얼굴들을 찾아 그분들의 구상과 비전을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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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6·25 20주 3천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전쟁 3년|낙동강 공방전 분초의 다툼(3)
유엔군이 낙동강교두보를 확보하면서 동시에 적의 허리를 끊는 상륙작전을 준비하고 있는 동안, 북괴는 단하나의 승산인 부산점령을 목표로 이방면에 전력투구로 나왔다. 나중에 밝혀진 바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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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3)
경화 그럴수가, (순간 지원의 뺨을 때리며) 나쁜 애! 넌 날 배신뱄어! 넌 날…(울음을 터뜨린다). 지원 (소리치듯)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실수였단말야! 경화 (역시 소리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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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백남억 공화당의장서리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거뜬히 치러야죠』-. 계속되는 회의와 방문객을 만나느라고 약속보다 며칠이 지나고도 한참을 기다리게 하고서야 시간을 낸 백남억 공화당의장서리는 몇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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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6.25 20주 3천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전쟁 3년|낙동강공방전(분초의 다툼)(2)
낙동강공방전초기의 피아전력을 비교해보면, 적은 병력과 장비가 한계에 이른데 반하여 아군은 상승일노에 있었다. 시간은 분명히 유엔군편이었다. 이때 누가 보아도 상식적으로 이 공방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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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1)
경화(26세) 회사 전무의 비서. 지원(26세) 경화의 친구로서 같은 회사 평사원 상현(32세) 같은 회사 기획실장. 창빈(28세) 같은 회사 기획실 평사원. 깊은 가을. 초저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