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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지리·역사 다 배웠지…일본말은 딱 하나 알아, 바카야로
1 1931년 3·1절 기념행사 후 인성학교 교사와 학생들이 서 있다. 원으로 표시된 학생이 최윤신 할머니. 2 1926년 3월 8일 거행된 인성학교 제6회 졸업식. 맨 오른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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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중국 도시 이야기 ⑭ 하이난(海南)성 하이커우(海口)
한국에 제주도가 있다면 중국에는 하이난다오(海南島)가 있다. 하이난은 중국의 남쪽 하늘 끝에 자리 잡은 휴양의 메카다. 하늘의 끝은 중국어로 톈야(天涯·천애)다. “하늘 끝에서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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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246) 예첸위
▲예첸위는 무슨 일이건 혼자 하는 습관이 있었다. 평생 제자는 많아도 조수는 없었다. 1980년대 초 간위(甘雨) 골목의 사저에서. [김명호 제공] 1940년 봄 항일전쟁에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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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첸위, 이혼 통보 받자 “아름다움 극에 달하니 추해지네”
예첸위는 무슨 일이건 혼자 하는 습관이 있었다. 평생 제자는 많아도 조수는 없었다. 1980년대 초 간위(甘雨) 골목의 사저에서. [김명호 제공] 1940년 봄 항일전쟁에 참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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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245) 대화가 예첸위의 네 여인
▲예첸위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오만상을 찌푸린 적이 없고 말과 행동에 유머가 풍부했다. 권위적인 사람일수록 얼굴에 고난의 흔적이 없다는 말을 자주했다. 사진은 그가 82세 때의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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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가 예첸위의 네 여인, 그중 셋은 예술계 전설이었다
예첸위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오만상을 찌푸린 적이 없고 말과 행동에 유머가 풍부했다. 권위적인 사람일수록 얼굴에 고난의 흔적이 없다는 말을 자주했다. 사진은 그가 82세 때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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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높이 24m … 쑨원의 부인 쑹칭링 동상
4일 중국 허난(河南)성 정저우(鄭州)시에서 고(故) 쑹칭링(宋慶齡·송경령·1892~1981) 부주석의 동상이 건설되고 있다. 높이 24m 규모로 신해혁명 100주년을 맞아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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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신해혁명 100주년에
예영준중앙SUNDAY 차장 레닌이나 체 게바라가 그랬듯 쑨원(孫文)도 혁명활동의 오랜 시간을 해외에서 망명객으로 보냈다. 1914년 그는 도쿄에서 권토중래(捲土重來)를 노리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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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철의 차이니즈 리더십] “황하가 맑아질 때까지 언제 기다립니까…나는 행동가입니다 ”
10일로 청조(淸朝)를 타파하고 2133년에 걸친 황제 체제에 조종을 울린 신해혁명(辛亥革命)이 발생한 지 100주년을 맞는다. 중국은 아직도 양안(兩岸·중국과 대만)으로 나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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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혁명 100년 중국을 알자 ④ 다시 쑨원에게 길을 묻는다
쑨원의 생애 마지막 연설 ‘차(次)식민지’. 100여 년 전 중국의 상황을 쑨원(孫文·손문)은 이렇게 표현했다. 갈가리 찢긴 중국의 모습이 식민지만도 못하다는 뜻에서였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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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187) 장제스, 소련 코민테른 간부와 아들 교환
▲시베리아 시절 중기계창 동료들과 야유회를 나온 장징궈(앞줄 좌6)와 부인 파이나(앞줄 좌5). 파이나는 중국에 온 뒤 시어머니로부터 장팡량(蔣方良)이라는 중국 이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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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스, 소련 코민테른 간부와 아들 교환 제의 거절
시베리아 시절 중기계창 동료들과 야유회를 나온 장징궈(앞줄 좌6)와 부인 파이나(앞줄 좌5). 파이나는 중국에 온 뒤 시어머니로부터 장팡량(蔣方良)이라는 중국 이름을 받았다.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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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장제스와 틀어진 장징궈 “그는 나의 적이다”
조모 왕차이위(王采玉)의 품에 안겨있는 유아시절의 장징궈. 1911년 저장(浙江)성 펑화(奉化)현 시커우(溪口). 김명호 제공 신해혁명 성공 후 중국은 남북으로 분열됐다. 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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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마오쩌둥의 공공외교
▲1960년 6월 중국을 방문한 에드거 스노(Edgar Snow). 당시 중국은 미국인들의 방문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에드거 스노는 예외였다. 국가주석 류샤오치와 대화 나누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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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군 枯死 직전, 에드거 스노 기자를 불러들이다
1960년 6월 중국을 방문한 에드거 스노(Edgar Snow). 당시 중국은 미국인들의 방문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에드거 스노는 예외였다. 국가주석 류샤오치와 대화 나누는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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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여성의 힘
신(新)중국엔 대표적인 여성 두 명이 있다. 한 사람은 ‘신중국을 만든 여인’, 또 한 사람은 ‘신중국을 망친 여인’이다. 중화권 언론의 표현이다. 후자부터 보자. 1949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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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일류 인물들이 만든 이류당②
▲1950년대 말 우파분자로 몰린 우쭈광, 딩충, 황먀오쯔(왼쪽부터)는 지금의 헤이룽장(黑龍江)성 싼장(三江)평원인 베이다황(北大荒)에 끌려가 3년간 노동을 했다. 1961년 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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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작가 우쭈광 집에선 저우언라이도 문화비평가
1950년대 말 우파분자로 몰린 우쭈광, 딩충, 황먀오쯔(왼쪽부터)는 지금의 헤이룽장(黑龍江)성 싼장(三江)평원인 베이다황(北大荒)에 끌려가 3년간 노동을 했다. 1961년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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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 北京의 고택 문화재
독립운동가였던 고하 송진우선생의 고택이 문화재로 지정한다는 보도가 있다. 서울에도 고택문화재가 늘어 날 전망이다. 사실 500년 이상 조선왕조의 정도였고 근현대 한국의 심장부인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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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투(兎)회
국공(國共)은 1949년 4월 1일부터 베이핑(北平)에서 평화협상을 벌인다. 기간은 20일. 장제스(蔣介石)는 끝내 서명을 거부한다. 마오쩌둥(毛澤東)은 21일 제2, 제3 야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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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친일 인명사전과 漢奸
요즈음 한국에는 과거 유명인사가 “친일인명사전”의 명단에 들어 갔느냐 빠졌느냐를 가지고 시비가 분분하다. 친일명단에 들어 갔으면 이른 바 韓奸이 되므로 후손들은 얼굴을 들 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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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준걸열전] ‘당대의 와룡선생’ 양융타이
“선제(先帝, 유비)께서 창업하신 뜻의 반도 이루지 못한 채 중도에서 붕어하셨다. 이제 천하가 셋으로 나뉘고 익주(益州, 지금의 쓰촨)는 피폐해졌으니 진실로 위급 존망의 때다(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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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국민 시사만화가’ 딩충 추모 행렬
지난달 26일 93세를 일기로 타계한 중국의 국민 시사만화가 딩충(丁聰·사진)에 대한 중국 각계의 애도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북경만보(北京晩報)는 최근 “딩충 선생을 추모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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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 곁에 산소호흡기 두고 닉슨과 회담”
중국 외교가에 ‘딸을 낳으면 탕원성처럼 키워라(生女當如唐聞生)’라는 말이 있다. 탕원성(唐聞生·66·사진)은 1970년대 초 마오쩌둥(毛澤東)의 영어 통역으로 다른 네 명의 젊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