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국민 시사만화가’ 딩충 추모 행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40면

지난달 26일 93세를 일기로 타계한 중국의 국민 시사만화가 딩충(丁聰·사진)에 대한 중국 각계의 애도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북경만보(北京晩報)는 최근 “딩충 선생을 추모하는 당·국가 지도자들과 정부기구·사회단체의 조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이어 “타계한 당일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직간접적으로 조의를 표했고, 자칭린(賈慶林) 정협주석이 조전을 보냈다”고 전했다. 전·현직 국가 주석과 현직 총리 등 중국의 최고 지도자들이 앞다퉈 조문을 하는 경우는 이례적으로, 딩충이 중국 시사만화계에 끼친 영향을 가늠하게 했다.

그는 1979년 창간돼 중국 지식인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끼쳐온 월간지 ‘두수(讀書)’에 30년간 고정 만화칼럼을 연재했다. 그는 해학과 위트 넘치는 필치로 청년층부터 노년층까지 폭넓은 독자층의 사랑을 받아왔다.

영향력이 큰 시사만화가였지만 필명으로 ‘이름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뜻의 샤오딩(小丁)을 썼을 정도로 겸손하고 서민적인 사람이었다고 남방도시보는 전했다. 딩(丁)자는 중국어로 사람을 뜻한다. 유언도 단촐했다. “장례식도 필요 없다. 유골은 보관하지 말아달라”는 것이었다.


딩충은 30년대 말 항일전쟁 선전 포스터와 루신의 『 아Q정전』등 중국 대표 작가들의 작품에 삽화를 그렸다. 화가로서 세상에 이름을 알린 것은 ‘중국의 국모’로 불리는 쑹칭링(宋慶齡)여사에게 발탁되면서다. 39년 홍콩에서 ‘보위중국동맹’ 주석으로 활동하던 쑹 여사는 그가 그린 유화 ‘도망(逃亡)’을 보고 정치적인 감수성을 간파했다.

‘도망’은 피란 길에 나선 노부인과 아이를 안은 처자, 노새를 끄는 노인이 각각 다른 곳에 시선을 두고 있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전란으로 정처 없이 떠도는 민초들의 서글픈 운명을 화폭에 담았다. 일본의 침략을 받은 중국의 현실을 전세계에 알린 기념비적인 그림으로 꼽힌다. 쑹 여사는 이 작품에 따로 ‘난민’이란 제목을 붙일 정도로 아꼈다. 만화집으론 상하이 사회와 인물들을 담은 ‘현상도(現象圖)’ 등을 남겼다.

선창원(沈昌文) 전 ‘두수’ 편집주간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두수의 편집 디자인도 그의 손끝에서 나왔다”고 추모했다. 중국작가협회 주석·문화부 장관을 역임한 소설가 왕멍(王蒙)은 “샤오딩이란 필명은 영원히 천진하면서 위트 넘쳤던 그의 작품을 연상하게 한다”고 애도했다. 

정용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