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위수령 12조 의거 군 병력 지원요청

    양탁식 서울시장은 15일 상오 10시 30분 고대·연대·성균관대 등에서 연이어 일어나는 성토 및「데모」사태를 중시, 국방부에 군 병력의 지원을 위수령 제12조에 의해 요청했다. 이

    중앙일보

    1971.10.15 00:00

  • 성대·동 대·외대·학대 4개 대 데모

    ▲성균관대학교 학생 1천여 명은 14일 상오 10시 40분쯤 부정부패일소 성토 끝에 교문을 나와 데모, 2백m쯤 진출하여 경찰과 투석전을 벌였다. 성대총학생회는 이날 수업을 전폐하

    중앙일보

    1971.10.14 00:00

  • 2백여명 거리로

    ▲성균관대학교 학생 2백여명은12일 상오11시40분쯤 부정부패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면서 교문을 나와 명륜동 네거리까지 진출, 경찰과 투석전을 벌였다. 학생들은 경찰의 최루탄 공세

    중앙일보

    1971.10.12 00:00

  • 2천 고대생 데모

    ▲고려대학교 학생 2천여명은 11일 상오 11시쯤 군인의 학원난입 사건에 항의, 『국방장관은 공개사과하고 사임하라』는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교문을 나왔다가 최루탄을 쏘는 경찰에

    중앙일보

    1971.10.11 00:00

  • 군의 기강 문란, 군 학원난입 국방위 질문

    국회 국방위는 8일 유재흥 국방장관·서종철 육군참모총장·심흥선 합참의장을 출석시켜 군인의 고대 난입사건의 진상을 추궁했다. 신민당의 이철승의원 등은 군인이 국방장관이나 부대장의 승

    중앙일보

    1971.10.08 00:00

  • 성대 개교 76주 기념

    성균관대학교 76주년 개교 기념식이 25일 상오 10시 중 강당에서 거행됐다. 민관식 문교부 장관, 김윤덕 의원 등 많은 내외빈과 교수·학생들이 참석한 기념식은 박동앙 초장의 식사

    중앙일보

    1971.09.25 00:00

  • 교련 개선 안에 학생 투표키로

    성균관대학교의 범성균민주쟁취투위(위원장 이명룡·정치학과 3년)는 26일 상오 문교부의 교련 수정안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 『성대 생의 교련 전면철폐주장에는 변함이 없으나 학생들의

    중앙일보

    1971.06.26 00:00

  • 숙제 안은 해빙… 휴업령 해제

    이번 학기 동안 계속된 대학가의 소요사태는 24일자로 서울대 4개 단과대학에 내려진 휴업령이 해제되고 서울대학·처장 회의가 24일부터 개강, 정상수업에 들어가기로 결정함으로써 일

    중앙일보

    1971.06.24 00:00

  • (7)|교문을 열자|이해원신상우

    『닫혀진 학교의 문은 무조건 즉시 열려야 한다』-. 둘 다 초선인 대학 교수 출신의 이해원씨(공화) 와 일선 기자를 지낸 신상우씨(신민) 의 학원 정상화 처방은 일치했다. 초면인

    중앙일보

    1971.06.18 00:00

  • 서울대 내주 안에 정상화|문교부-단계적 해결방안 구상

    문교부는 휴업령 임시휴강 등으로 사실상 전체적인 기능이 마비상태에 있는 서울대학교를 내주 안에 정상화한다는 방침을 굳히고 이에 따른 단계적인 해결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민관식 신임

    중앙일보

    1971.06.05 00:00

  • (43)|동남아(14)|인내와 긍지로 이기는 인도의 유학생들-

    인도에는 『뜨거운 태양열과 까마귀가 없으면 전 국토가 모두 소의 무덤으로 덮이게 될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 전 인구의 65%이상이 소를 신성시하는 힌두교를 믿고있기 때문에 세계

    중앙일보

    1971.06.05 00:00

  • 새 좌표 찾는 대학가-학생회장 선거 정화·자율운동

    학생회장 선거 철을 맞은 6월의 캠퍼스에 『상설한 대학의 좌표를 다시 정립하자』는 움직임이 조용히 일고 있다. 지성인다운 명랑 선거를 치르자는 대학선거정화 캠페인에서부터, 『학원에

    중앙일보

    1971.06.04 00:00

  • 서울대 휴업장기화 할 듯

    이번 주말까지 서울대의 4개 단과대에 대한 휴업령 해제를 고려하던 문교부는 서울대당국의 자체적인 수습노력에도 불구하고 학원정상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 휴업령 철회방침을

    중앙일보

    1971.06.03 00:00

  • (5)|두 교수의 토론…5·25를 말한다|8대 국회의 과제

    8대 국회는 무엇보다도 사회적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지금까지 여당은 권력에 대해서만 권위주의였고, 야당은 권력에 권위주의적이 아니었던 반면 사회적 변화에는 보수적이었던게 사실이다

    중앙일보

    1971.06.02 00:00

  • (161)|경성제국대학(15)|강성태 &해방과 함께 교명도 「경성 대학」으로 변경|47년에는 현재의 「서울대학」으로 다시 개교|일제가 세운 학교 다녔다고 욕먹은 졸업생도

    해방되던 해에 졸업한 의학부 17회 졸업생 (법문학부 18회에 해당) 에는 강중구 (개업) 김세경 (우석 의대 학생) 노종문 (개업·이비인후과) 임창제 (개업) 함용주 (개업·냇

    중앙일보

    1971.05.22 00:00

  • (158)| 경성 제국 대학|강성태

    요릿집은 대개 한상에 5원부터 10원까지 받았는데 5, 6명은 충분히 먹을 수 있었다. 기생은 전속제가 아니고 권번이 있어 시간제였는데 대표적인 권번으로 한성·조선·종로 등이 있

    중앙일보

    1971.05.19 00:00

  • (154) | 경성제국대학 (8)|강성태

    4회의 최식씨 (현 성균관대 법정대 교수·6회의 고인은 잘못임)는 영남 일대는 물론 전국적으로 알려진 경주 최 부잣집의 집안이다. 9대 진사에 12대 만석꾼인 최 부잣집의 종가에

    중앙일보

    1971.05.14 00:00

  • (23)한국의 정치 그 풍토와 「모럴」

    도덕적 규범의 제재 없이 힘만이 난무했던 우리 정치 사회에 있어서는 정치에 대한 우리의 기본적 태도가 비관주의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또한 민주주의가 우리에게는 하나의 「유트피아」

    중앙일보

    1971.05.13 00:00

  • (152)제11화 경성제국대학

    이 가운데 원흥균씨는 문학사 학위를 얻은 뒤 법과에 학사편입, 6회 졸업과 함께 법학사 학위도 받았다. 문과 2회와 법과 4회의 김형철씨, 문과 3회와 법과 7회인 윤태림씨 등

    중앙일보

    1971.05.12 00:00

  • (151)제11화 경상제국대학(5)

    임문석씨는 졸업 후 평안도선천군수로 갔는데 총독부의 연례 지방행정관회의 때 우원 총독의 농촌진홍정책내용에 대해 농민착취 내용이 많다고 약30분간 신랄한 비판을 가해 『당신은 신문

    중앙일보

    1971.05.11 00:00

  • 데모주동자 징계

    서울대학교는 8일 지금까지 교련반대와 대통령선거를 둘러싸고 연일 계속돼온 일부학생의학내의 「데모」·무단집회에 대해 앞으로 주동학생을 색출, 학칙에 따라 징계하기로 했다. 서울대는

    중앙일보

    1971.05.08 00:00

  • (149)제11화 경성제국대학(3)

    경성제대예과 개교당시 입학한 45명의 한국인 학생 가운데는 법과에 유진오 주병환(4대민의원·대구고보졸) 이민희(전 상업은행전무·고인) 김처순(교육자·평양고보졸·고인) 전승범(전

    중앙일보

    1971.05.08 00:00

  • 대학가 두 표정|일부 대학선 "27일까지 주시하겠다"

    교련 강화 반대, 학원의 자유수호 및 공명 선거를 부르짖으며 「데모」를 벌여 경화되었던 대학가는 서울대 가정대가 개강한데 이어 21일 연세대·고대·성균관대·우석대·중앙대·한양대·숭

    중앙일보

    1971.04.21 00:00

  • 교련복 반환운동|성균관대생들

    성균관대생 5백여 명은 19일 상오 10시30분쯤 교정에서 4·19 의거 11돌 기념식을 가진 뒤 교련복 반환운동을 펴기로 결의하고 정오쯤 교문을 나와 경찰과 투석전을 벌였다. 이

    중앙일보

    1971.04.19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