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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제2장 1930년대의 조선혁명군|이명영 집필(성대교수 정치학)
1932년 여름까지 김성주는 조그마한 무장조직의 일개 대원으로서 살상을 일삼았거나 무송에서 작당하여 무기를 들고 다니며 약탈을 했고, 그러다가 드디어는 우리 독립군을 참살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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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설·실존·도명을 밝힌다|양세봉의 관용을 저버린 김성주|이명영 집필 (성대 교수 정치학)
무송 일대에서 약탈을 일삼던 김성주 일당을 응징하여 한·중 민족 사이에 알력이 없도록 하기 위해 무송으로 출동했던 우리 민족주의 독립군인 조선 혁명단의 유하현 삼원포 주둔 고동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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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그 전설·실존·도명을 밝힌다|이명영 집필(성대교수 정치학)|이종락 부대의 종말
김성주의 두목 이종락의 조선 혁명군 길강 지휘부는 중공당 만주 성위의 인정을 받지 못해 그 대원들도 개별 입당 원칙에 따른 만주 성위 예하 조직 가입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물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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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학원 정상화에 주안|4·3 긴급조치의 배경
정부는 데모 학생의 군재 회부와 최고 사형까지의 형벌을 규정한 「4·3 대통령 긴급조치」는 『학원 내에 공산 세력이 침투했기 때문에 취해진 조치』라는 설명이다. 긴급조치에서 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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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괴 권력층 서열 큰 변동
【동경=홍두표 특파원】최근 북괴 상층부의 서열에 일대 변동이 있었다고 26일 북괴소식에 정통한 이곳의 통일일보가 북괴의 조선중앙통신을 인용, 보도했다. 통일일보 보도에 따르면 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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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괴 기독교 연맹중앙회성명은 상투적인 기만술책이다"
한국기독교협의회(회장 배명준)는 지난 5일 북괴의 「조선기독교 연맹중앙위원회」라는 이름으로 발표된 성명에 대해 14일 『북괴집단은 상투적인 기만술책을 버리고 조국 앞에 죄를 회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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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남 비방자료 배포|북한 업저버, 유엔에
【유엔본부24일동양】북한 「유엔」 「업저버」단은 23일 금년 들어 처음으로 악의에 찬 대남 비방으로 가득 찬 평양 노동신문 사설 등 26「페이지」에 달하는 4건의 선전자료를 배포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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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영국의 정치학자 「해럴드·J·라스키」교수와 같은 사람은 『공산주의사회에서의 권력투쟁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우선 그 사회엔 복수정당제가 없다. 오로지 독재자만 있을 뿐이다.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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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내에 권력투쟁설
【동경=박동순특파원】최근에 북한이 보여주고 있는 남북한회담에 대한 강경한 자세와 백령도 주변에서의 도발행위 등은 북한내부에서 진행되고있는 심각한 권력투쟁과 관련된 것으로 분석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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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9)내가 아는 박헌영(178)|박갑동(제자 박갑동)
먼저 독자 여러분의 끝까지 변함없으신 애독과 많은 애로에도 불구하고 연재를 계속하여주신 중앙일보사의 여러분께 심심한 사의를 표합니다. 이 글을 쓰게된 동기는 누구를 원망하기 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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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돌려달라 간청에 「자백」 강요 고문에 「셰퍼드」이용 온몸이 물려 피투성이
가족까지 빼앗긴 박창영은 참으로 분함을 참아가며 가족을 돌려 달라고 몇 번이나 부탁하였었다. 그들은 가족을 돌려주는 대신에 자기들이 조작한 죄상을 스스로 인정하라고 강요하며 『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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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질문·문답요지
◇민병기 의원(공화)질문=▲김대중씨 사건은 일본인들이 떠들어대서가 아니라 반드시 우리나라 입장으로 봐도 규명돼야 할 문제다. 그러나 김씨 사건은 일본의 일부 언론과 정치인들이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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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질문·답변 요지
◇김영삼 의원(신민)질문=▲김대중씨 사건에 대해 질문하려고 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서글프다. 이번 사건도 정치「테러」의 한 유형이라고 본다. 이 문제는 한 정권의 문제가 아니고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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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씨의 미·일 대한 경협 중단촉구 발언 사실이라면 중대범죄 김 총리
김종필 총리는 22일『김대중씨의 해외언동 중 일본의 대한경원중단, 미국의 경원 및 군원중단주장과 김일성의 연방제지지 등이 사실이라면 이는 중대한 범죄』라고 말했다. 김 총리는 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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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씨 사건 국회 질문답변 요지
◇김용성 의원(유정)질의 ▲김대중씨 사건은 단순한「테러」납치사건이 아니다. 아직 체포되지는 않았으나 구국 동맹행동대원은 정치적 확신범이다. 그것은 김대중씨가 해외에서 남북한연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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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3)|내가 아는 박헌영(172)-박헌영계 숙청
이승엽「그룹」에 대한 재판은 1953년 8월 3일에서 6일까지 평양에서 진행되었었다. 재판장은 김인선이며 담당판사는 방용숙·박영호였다. 검사 측은 명사부총장 김동학이 참가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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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2)|내가 아는 박헌영(171)-연금상태의 나날
평양에 이송되어 「이승엽 간첩사건」을 듣고 청천의 벽력을 맞은 것 같이 눈앞이 캄캄하였다. 이승엽「그룹」들이 간첩행위를 해서가 아니라 평양경계 안의 파쟁의 결과라는 것을 나는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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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1)|내가 아는 박헌영(170)-북에서의 좌절감
나를 강제로 개성까지 데려다놓고는 남한에 침투하여 가서 「대남 공작」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나에게『동무는 지하공작의 우수한 경험자가 아닌가. 절대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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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0)|내가 아는 박헌영(169)-장병민 설득 실패
내가 서울지하당시대 최후까지 체포되지 않고 무사히 지내왔다는 것이 의외로 나를 괴롭히게 하였다. 나의 고향 경남의 속담에 나무재주 잘하는 놈은 나무에서 떨어져 죽고 물 재주 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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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7)|내가 아는 박헌영(166)|박갑동
혁명이란 무엇인가? 정치란 무엇인가? 모두 전 인민의 행복을 위해서이다. 그런데 북한에 와 보니 복수·차별·탄압이 소위 사회주의의 틀치고는 중세기적이며 추악하기 짝이 없다. 월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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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5)|내가 아는 박헌영(164)|박갑동
북한내각의 문화선전 성 구라파부장이라는 자리는 다른 부서에 비하여서는 화려하며 좋은 부서였다. 사업은 주로 동구라파 제국과의 문화교류인 동시에 동구라파제국에서 오는 외교관이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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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3)|내가 아는 박헌영(162)|박갑동
김일성 파 이외 파에 대한 비판을 본다면 소련파의 김 열은 총살, 태성수(노동신문 주필·문화선전부장)는 철직 당하였다. 중공 파로서는 제2군단장인 무형이가 오랫동안 감금당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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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2)|내가 아는 박헌영(161)|박갑동
패퇴하여 만주까지 도망치게 되어 궁지에 빠진 김일성은 전쟁을 중간 결산하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3회 전원회의의 보고문안을 기안할 권한까지 잃고 그 기초를 부위원장인 허가이에게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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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1)|내가 아는 박헌영(160)|박갑동
김일성을 수반으로 하는 이른바 북한노동당의 무력통일기도는 한국국민의 완강한 항전과 「유엔」군의 개입에 의하여 완전히 파탄되고 말았다. 한국국민은 기습을 당하여 한때 수도 서울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