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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갇스비 콜랙숀’ 할아버지가 논 1만 마지기 팔아 샀다
큰 사진. 문화재 수집으로 ‘문화보국’을 외치던 간송 전형필 선생은 3·1운동에 물심양면으로 참가한 보성중학교를 1940년 인수해 ‘교육보국’에도 나섰다. 일제 강점기 시절 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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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보성고, 독도 탐방 뒤 위안부 성금 본지 기탁
개교 110주년을 맞아 독도를 방문한 보성고 교우회.서울 보성고등학교 교우회(회장 정재영)가 개교 110주년을 맞아 지난 19~21일 교우·재학생·교사 110명이 참가하는 독도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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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 속 그 이야기 북한산둘레길 1코스
l 1000그루 넘는 솔 향 솔솔~ 독립운동 역사의 향기도 넘실~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하는‘걷기여행길 종합안내포털(koreatrails.or.kr·이하 걷기여행길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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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메운 600여 학생·주민 “만세!” 그 날의 함성 들리는 듯
4일 아산시 선장면에서 뜻 깊은 행사가 열렸다. 지난 1919년 4월 4일 주민 약 200여 명이 선장장터에서 시위를 벌이고 헌병주재소를 습격한 독립운동 사건을 재현한 것이다.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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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고금통의 古今通義] 손병희의 삼전론
이덕일역사평론가3·1운동은 자칫했으면 미수에 그쳤을 수도 있었다. 최남선(崔南善)이 쓴 ‘독립선언서’는 천도교에서 운영하는 보성사에서 인쇄했다. 한밤중에 몰래 독립선언서를 인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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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선 소장의 한국 자동차 비사(秘史) ⑦ 민간인 자가용 오너 1호
1915년쯤 의암 손병희 선생이 타고다니던 자동차. 귀족이 아닌 민간인으로서 처음 자가용을 이용했다. 왕족이나 귀족의 전유물이었던 자동차는 1915년을 넘어서자 부호·지주·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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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종교가 ‘2% 종교’라고?
2000년 세밑이었다. 가수 조영남이 펴낸 따끈한 신간 ‘예수의 샅바를 잡다’(나무와 숲)를 읽다가 “옳다구나!” 싶었다. 흔한 신학 에세이와는 달랐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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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내달 1일 현도(顯道)100주년
천도교가 12월 1일 현도(顯道) 100주년을 맞는다. 현도란 동학 3세교주 의암 손병희(사진)가 1905년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한 것을 말한다. 천도교는 1860년 수운 최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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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 '청년아, 너희가 시대를 아는냐'
"젊은이나 늙은이는 이미 희망이 없다. 우리는 오직 나머지 힘을 가하여 가련한 후생(後生) 어린이에게 생명의 길을 열어주자는 취지로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하여, 어린이들을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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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와 자동차] 첫 마이카족 손병희 선생
국내에서 왕족을 제외하고 자가용 자동차를 최초로 탄 민간인은 의암(義菴) 손병희(孫秉熙.사진)선생이다. 의암은 봉건적인 악습을 타파하고 부국론을 주창한 구한말 지식인이다. 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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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 의암기념관 내달 개관
의암(義庵) 손병희(孫秉熙.1861~1922)선생의 생가복원 등 유허지(遺墟址)정비 사업이 10년만에 마무리돼 오는 3.1절 개장된다. 의암 선생 유허지는 충북 청원군 북이면 금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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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손병희선생 생가 역사교육장으로 활용
독립운동가이자 천도교의 3대 교주였던 의암 손병희 (孫秉熙.1862 - 1922) 선생의 생가 (충북도 기념물 30호)가 역사교육장으로 활용된다. 충북 청원군은 23일 북이면 금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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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암 손병희 선생 76주기 추모식
義菴 孫秉熙선생 76주기 추모식이 19일 오전 서울강북구우이동 묘소에서 천도교 종단 주관으로 열렸다. 선생은 1882년 동학혁명에 참여한 뒤 1906년 천도교 교주로 취임, 교육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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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소식]천도교 중앙총부,'人日' 1백주년 기념행사 外
'人日' 100주년 기념행사 …천도교 중앙총부 (교령 김재중) 는 오는 24일 의암 (義菴) 손병희 (孫秉熙) 선생의 동학 (東學) 교주 승통 (承統) 1백주년을 맞아 유품전시회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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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98년은 천도교 제2세 교주 해월 최시형선생의 순도(6월2일)1백주년이 되는 해다.지난 4월 발족된 해월신사 기념사업회에서는 경기여주 천덕산의 해월신사묘소를 정비하는 한편 강원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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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교역자 33명/내달 북한방문 추진
천도교중앙총부(교령 오익제)는 20일 오전 서울 경운동 수운회관 2층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의암 손병희 선생이 천도교 교주가 된 12월24일을 남북한 합동으로 경축할 것을 북한천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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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혁명·신간회서 활약|천도교 4대 교주 박인호씨
8·15를 맞아 독립유공자로 독립장을 추서 받은 박인호 천도교 제4대 교주(1855∼1941)는 동학혁명, 3·1운동, 6·10만세 사건, 신간회 결성 등에 직·간접으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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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희 선생 생가 국민교육장 꾸민다
3·1독립운동 지도자 의암 손병희 선생의 생가 일대가 민족 정신의 선양을 위한 국민 교육장으로 만들어진다. 의암 생가는 충북 청원군 북이면 금암리에 자리잡아 71년 본체만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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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도일 기념식
천도교는 18일 상오11시 도일기념일을 맞아 서울중앙 대교당을 비롯한 전국지방교구에서 일제히 기념식을 갖는다. 도일은 제4대 교주 춘암상사가 제3대 교주 의암성수로부터 도통을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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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4244)-제81화 30년대의 문화계(177) 조용만
위창 오세창은 33인 중의 한사람으로 정치가 속에 넣는 것이 보통이지만 언론인으로, 서예가로, 또는 저술가로 문화인 쪽의 비중이 더 크다. 그는 금석학의 대가이고 우리 나라 개화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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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신타파등 생활개선 앞장서
천도교 여성회 (회장 전초봉)가 올해로 창립 60주년을 맞아 25일 상오11시 서울 우이동 부도교 종학원에서 기념식 및 학술발표회등을 갖는다. 24년 4월5일 의암 손병희씨의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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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한제국의 최후③제자·일중 김충제
대한제국의 폐멸을 촉진하는 세사람의 바람잡이 민간주역-일본의 이른바 대륙낭인과 한국의 일진회 수괴들이다. 특히 일진회는 정부레벨의 공작을 한발앞서 부추기는 꼭두각시였다. 「이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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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희도 「밀손」
손서륜은 문종때의 집현전 박사로 성삼문·박팽년등과 함께 문명을 떨쳤다. 그는 단종이 실각하자 단종복위를 꾀하다 처형당하는 비운을겪는다. 손비장은 서거정등과 함께 『동국통감』을 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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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종교의 현주소(20)천도교와 민중시위
1893년 2월11일 한성 경복궁 광화문 앞-.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수천명의 동학교도들이 엎드려 상소를 올리며 연좌데모를 벌이는 이른바 「복소단식운동」을 전개했다. 이들의 요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