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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욱의 문화재전쟁] 1993년 북한이 찾았다는 단군릉, 왜 평양서 나왔을까
━ 북한과 중국의 고대사 갈등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1970년대 북한은 중국과 치열한 고조선 논쟁을 벌였다. 당시 북한은 고조선의 중심지가 만주에 있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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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람한 저 천년 은행, 얼마나 많은 중생을 보듬었을까
지난 입춘(2월 4일)에 양평 용문사를 찾았다. 간밤에 내린 눈이 경내에 소복이 쌓였다. 나는 용문산 밑자락 덕동이라는 산고랑에서 산다. 가까이 있는 용문산 용문사를 여러 차례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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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업] 춘향부터 원효까지 창작오페라 한자리서 만난다
1984년 찍은 국립오페라단의 ‘원효’ 공연 모습. [사진 국립오페라단]“사람이 바람의 형젠 줄 바람이 사람의 형젠 줄 몰랐던가. 목숨 가진 것 모두가 바람의 동생이요 바람의 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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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세기 이어온 창작 오페라의 맥
‘미미’나 ‘피가로’가 아닌 ‘춘향’과 ‘호동왕자’를 오페라 무대에서 만난다. 1962년 창작 오페라 ‘왕자 호동’으로 창단공연을 하고 50년간 오페라의 보급과 토착화를 위해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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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 전 고구려가 손에 잡힐 듯 고분벽화 사진전
고구려 안악3호분 벽화에 나오는 부엌과 고기창고 . 고구려 안악3호분(황해남도 안안군 오국리)은 4세기 중엽 고구려의 일상을 조목조목 들여다보는 생활사 박물관과 같다. 부엌에선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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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엔 금가루 칠한 별자리 벽화
"고구려 조상들이 무덤을 쌓던 솜씨로 힘을 내자요." "야, 이것 단군 후손 맞구나." 지난달 29일 오전 호남리 사신총(四神塚). 평양에서 원산행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북동쪽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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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고구려 역사유적 답사
□고구려 역사유적 답사 (서길수 지음) 대륙을 향한 한국인의 기개가 살아숨쉬던 고구려. 분단과 이념장벽으로 그동안 멀게만 느껴졌지만 90년대 개방 바람 이후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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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화'한국사이야기' 발간기념 고구려·발해 탐방
그들은 역사학자가 아니다. 그러나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통한 자기점검은 신분.나이를 초월한 작업임에 분명할 터. 지난달 28일 시작해 6박7일 동안 진행된 '고구려.발해 역사 대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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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본기'등 역사서 열풍 고구려로 번져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 어린 시절 역사시간에 누구나 한번쯤 떠올렸을 법한 상상이다. 만주벌판에서 말 달리며 호령하던 기개와 용맹의 시기. 조그만 국토에 대한 콤플렉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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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反掌-손바닥 뒤집듯이 아주 쉬움
본디 이여반장(易如反掌)의 줄임말로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쉽다」는 뜻이다.우리 말로는 「누워서 떡먹기」라고나 할까.당태종(唐太宗)은 중국에서 드물게 보는 현군이었다.그가 국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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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安市城
안시성은 백암성에서 남쪽으로 약1백㎞ 떨어진 곳,수암을 거쳐압록강으로 가는 고대로를 제압하는 초입에 위치해있다. 안시성의 서북 방면은 요하 동쪽의 평야에 면해 있고,동남 방면은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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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지 장군
역사 기행 『카라코룸 하이웨이를 가다』가 중앙일보에 연재되기 시작했다. 그 길은 고구려의 후예 고선지 장군이 당군을 이끌고 중앙 아시아를 정복했던 원정길이다. 고구려가 망한 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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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서역서 만난 고구려인의 기개
저 멀리 세계 4대 산맥의 하나라는 카라코룸의 가파른 연봉이 숨을 가쁘게 한다. 만년설의 그 너머론 중공 땅.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를 뒤로하고 일로 북진, 자동차로 꼬박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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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고분 벽화엔 고구려인 기개가…
집안에는 7월3일부터 6일까지 4일간 머물렀다. 이번 방중의 가장 큰목적은 물론 광개토대왕비의 현상조사였으나 그 일만으로 모든 문제가 풀릴리 없었다. 일정상 이 정도밖에 들를수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