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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칸 영화제' 진출…'뽕' '피막' 이두용 감독 별세
이두용 감독이 19일별세했다. 사진은 1980년대 전성기 시절 이두용 감독이 촬영현장을 지휘하던 모습이다. [중앙포토] 한국영화 최초로 칸영화제에 진출한 원로 영화인 이두용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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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100년, 감독 100명이 100초짜리 영화 100편 만든다
한국영화 100년 기념사업 추진위 공동위원장인 이장호 영화감독(오른쪽부터)과 배우 장미희씨, 홍보위원장인 배우 안성기씨. [연합뉴스] 일제강점기였던 1919년 10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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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한국 영화의 개척자 나운규 ‘1000만 관객시대’ 씨 뿌리다
“다 찌그러져 가는 초가집. 두루마기 자락을 써늘한 바람에 나부끼면서 일하러 다니는 농촌의 인텔리겐치아 박 선생. 서울 가서 공부하다가 귀향한 대학생이 양복에다 고깔을 쓰고 농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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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대 영화·연극 전단 100여점 발견
▶ 이규환 감독의 ‘임자없는 나룻배’가 대전지역에서 상영될 당시의 전단. 영화제목이 ‘정춘삼'으로 바뀐 사실과 주제가 전문이 실려있다. 우측에는 함께 상영된 미국영화‘선라이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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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 민족운동 위해 유학생들 '아리랑' 상영
▶ 단성사의 극장 광고 전단. ‘금주 프로그램’으로 영화 ‘개척자’와 신극.협극.무용.노래 등을 소개하고 있다.▶ 이규환 감독의 ‘임자없는 나룻배’의 전단. 영화제목이 ‘정춘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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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샘] 남북 합작영화 '아리랑'과 나운규
지난해 남북화해 분위기를 타고 급물살을 탔던 남북 문화교류가 요즘은 뜸한 편이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취임 이후 다소 혼란스러운 대북 관계에서 문화교류는 앞으로 어떻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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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합작영화 '아리랑'과 나운규
지난해 남북화해 분위기를 타고 급물살을 탔던 남북 문화교류가 요즘 뜸한 편이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취임 이후 다소 혼란스러운 요즘의 대북 관계에서 문화교류는 앞으로 어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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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고 극장 '단성사' 재건축에 부쳐
세월이 또 하나의 유산을 삼킨다. 현존하는 극장 중 가장 오래된 단성사가 올 가을 사라진다. 그 자리엔 17층 규모의 복합극장이 들어선다. 1907년에 개관한 단성사는 지난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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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개척자 춘사 나운규 일대기 조명
한국영화의 개척자인 영화감독 춘사 나운규의 일대기가 TV드라마로 조명된다. MBC-TV는 일제시대 어려운 환경에서도 한국초기 영화의 기틀을 마련한 『춘사 나운규』(극본 김광림·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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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운규 업적 기려 「춘사 영화예술상」제정
한국영화의 개척자 춘사 나운규(1902∼37)의 업적을 기리는 영화계의 작업이 구체화되고 있다. 나운규는 26년 자신이 각본·감독·주연한 『아리랑』으로 시작, 그후 11년간 일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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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북으로 간 연예인들의 이야기
최은희·신상옥부부의 극적인 북한탈출로 북으로 간 문화예술인들의 거취가 새삼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해방과 6·25의 소용돌이 속에 월북했거나 납치돼가 「동토의 왕국」에 갇힐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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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대의 문화계(145)이경손
윤백남이 연극으로부터 출발해서 영화로 들어가 우리나라 영화계의 개척자가 되었듯이 윤백남이 가장 사랑하던 제자 이경손도 처음 연극계에 들어가 활동하다가 윤백남에게 재질이 인정되어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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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국산영화제작
1923년 총독부 체신국에서는 저축을 장려할 목적으로 영화를 만들기로 되어 이 영화 제작을 「민중극단」 대표인 윤백남에게 위촉하였다. 윤백남은 이를 응낙하고 『월하의 맹서』라는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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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곡 될 수 없는 일제학정의 미상
일본교과서 내용 「...학교 교육에서는 조선사는 일본사안에 편입되고 한편에서는 일본어의 수업이 행해지는 등 일본인에 동화시키려는 정책이 취해졌다. 『35년, 8년간의 미국유학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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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마다 느껴지는 저항정신|영화인 고 윤봉춘씨의 생애
우리나라 영화계의 개척자이며 공로자인 윤봉춘씨가 세상을 떠났다. 윤씨는 26세에 영화계에 「데뷔」, 고 나운규씨와 함께 초창기 한국 영화계를 주름잡으며 50년 반세기를 오직 영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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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그 입지의 현장을 가다―「방콕」에 정착한 전 영화감독 이경손씨(3)
일본인이 경영하는 「조선키네마사」에서 『해의 비곡』 『운영전』 등을 감독, 영화 제작 기술을 익힌 이씨는 선배인 윤백남을 업고 서울로 올라와 독자적인 작품 활동을 했다. 이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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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 황성 기독 청년회 (4)|오리 전택부
1904년 김종상씨는 YMCA 초대 체육 간사의 명예를 차지하게 되었다. 들어가 본즉 광속에는 곤봉이 주르르 걸려 있고 한쪽 구석에는 아령도 있었다. 이것은 YMCA 건물을 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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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무성영화시대(13)|신일선
명작『아리랑』으로 빛나는 춘사 나운규씨는 우리 영화사에 길이 남을 영화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낭만시대에 산 예술인들이 많이 그랬듯이 주색에 빠져 몸을 험하게 가진 분이었다. 이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