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아들’ 이대호(30·오릭스) 선수가 부산으로 돌아왔다.
23·24일 구덕야구장에서 ‘이대호 유소년·사회인 야구캠프’를 열고 야구를 지도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어린이 선수 40명과 동호인 40명 등 80명을 지도했다. 오전엔 몸을 푼 뒤 캐치볼 훈련부터 투수·수비·타격 훈련을, 오후에는 청·백군으로 나눠 실제 경기를 했다. 그는 “왼팔은 타깃을 겨냥하면서 어깨 평형을 잡은 뒤 오른팔로 던진다”며 시범을 보였다. 어린 선수에겐 “폼 나게 던지려 하지 말고 기본기에 충실한 투구 자세를 가지라”고 당부했다. 구덕야구장에서 그를 인터뷰했다.
-이런 재능기부를 계속할 것인가.
“시간이 없고 기회가 없어 못했을 뿐이다. 해마다 하고 싶다.”
-왜 캠프를 열 생각을 했나.
“수도권에선 이런 캠프들이 열리지만 부산은 드물다. 어린이들이 유명 프로 야구선수를 만나 꿈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
-무엇을 강조하는가.
“기본기에 충실하라고 가르친다. 홈런을 치려 할 게 아니라 기본기를 열심히 하다 보면 홈런이 나온다. 나의 모교에서 유명한 야구선수가 많이 나오는 것은 기본기를 철저히 지도한 감독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10월 10일 귀국 후 어떻게 지내나.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낸다. 가까운 곳에 여행을 다니고 외식도 한다. 무엇보다 집에서 많이 쉰다.”
-한국에서보다 체중이 많이 준 것 같다.
“오릭스 입단 전에 10㎏ 감량했다. 귀국하고 쉬면서 다시 살이 조금 찐 것 같다.“
키 1m94㎝인 이대호는 롯데 시절 몸무게가 135~140㎏을 오갔다. 오릭스 입단이 결정된 뒤 러닝·웨이트 트레이닝과 수영, 식이요법으로 10㎏ 감량한 뒤 시즌 내내 125~130㎏을 유지했다.
-쉬는 동안 훈련을 하나.
“실전훈련은 하지 않는다. 웨이트 트레이닝, 유산소운동은 꾸준히 한다. 겨울에 몸을 만드는 준비운동 정도다.”
-내년 3월에 열리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예비선수 명단에 올라 기대가 크다.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 나가면 이긴다고 생각하고 나가야 한다. 한국은 올림픽과 두 차례 WBC에서 좋은 성적을 냈다. 당시와 멤버가 크게 달라지지 않아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귀국 회견에서 시즌 동안 힘들었다고 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 운동을 해 힘들었다는 의미였다. 일본 진출이 결정된 뒤 한국대표라는 생각이 들어 못하면 안 된다고 다짐했다. 이승엽·김태균 선수도 돌아와 일본 야구에서 한국 타자가 혼자라는 심리적 부담감이 많았다.”
-일본 활동에 대해 스스로 50점을 줬다.
“50점도 후하게 준 거다. 목표 100타점을 달성하지 못해 많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팀에 적응했고 다른 팀 투수들을 알았다는 점에서 50점이지 그 이상의 점수는 스스로 매기지 못하겠다.”
-한국과 일본의 야구 수준은.
“국제대회에선 우리 선수나 일본 선수나 실력 차가 없다. 하지만 전체적인 수준은 일본이 조금 나은 것 같다. 일본은 선수층이 두텁고 인프라나 선수 육성 등 여건이 좋다. 한국 야구도 이제는 실력이 많이 올라가 일본 야구 못지않다.”
-등번호 25번이 할머니를 위해서라던데.
“할머니 성함이 오분이였다. 할머니와 형의 헌신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 할머니가 살아계셨다면 효도를 했을 텐데 등번호라도 할머니의 이름을 따고 싶었다.
-부인이 챙겨 주는 보양식은.
“결혼 전엔 보양식을 먹지 않았는데, 지금은 아내가 챙겨줘 보약·복분자 등을 먹게 된다. 아내는 하나라도 더 해 주려고 한다.”
-내년 시즌 목표는.
“30홈런·3할·100타점이다. 그리고 당연히 우승이 다. 우승하려면 내가 잘해야 한다.”
-이대호에게 부산, 야구는 어떤 의미가 있나.
“부산은 제 고향이고, 야구는 제가 돈을 버는 직장이다. 직장이지만 전부일 수밖에 없다.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가장이 해야 할 일이다.”
그는 “기회가 된다면 메이저리그에 도전해 보고 싶다. 하지만 내년에 오릭스에 계약이 돼 있어 일본 야구를 열심히 하겠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이대호는 일본 프로야구 데뷔 첫해에 타점왕(91점), 홈런 2위(24개), 타율 9위(0.286), 출루율 4위(0.368), 장타율 2위(0.478), 안타 5위(150개)의 성적을 거뒀다.
최재필 월간중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