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 싸움에 흠집 난 문재인 … ‘안철수 표’ 흡수가 숙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가 공동선대위원장들과 단일화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23일 오전 서울 영등포 당사에 도착하고 있다. [김형수 기자]

23일 오후 8시20분.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정권교체를 위해 백의종군하겠다”고 하자 문재인 후보 캠프에선 충격 속에 탄식이 터져 나왔다.

 한두 명이 “야, 이겼다!”라고 외치기도 했지만 대부분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한 듯 침묵을 지켰다. 문 후보 캠프 총무본부에서는 ‘안철수 후보 사퇴기자회견에 대해 발언을 삼가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캠프 관계자들에게 발송하기도 했다. 이낙연 공동선대위원장은 “생각했던 것을 훨씬 뛰어넘는 큰 결심이고 내 생각이 작았구나 생각한다. 안 후보의 결심이 우리에게 주는 숙제가 있지 않겠나”라며 “안 후보를 사랑한 국민이 받은 충격과 슬픔이 있을 것이기에 이 시점에 정무적인 것을 생각할 수 없다”고 밝혔다.

 문 후보 측의 무겁고 조심스러운 반응은 단일화 협상 시작 전 공언한 ‘1+1=3’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우려에서 출발한다. 안 후보의 사퇴로 2012년 대선은 ‘박근혜-문재인’ 양자구도로 확정됐지만 단일후보가 된 문 후보 진영은 숙제를 안게 됐기 때문이다.

 안 후보 사퇴선언 후 문 후보는 가장 먼저 “안 후보와 안 후보의 지지자들에게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트위터에 올렸다. 안 후보 지지층 달래기가 발등의 불이 된 상황이다. 문 후보 캠프 관계자는 “승자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겸손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했다.

 이겨도 축배를 들 수 없는 상황은 단일화 과정 때문이다. 지난 6일 두 후보는 단일화에 합의하며 “유불리를 따지지 않는 아름다운 경쟁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아름다운 경쟁은 없었고, 유불리는 협상의 유일한 기준이 된 양상이었다.

 양 후보 측 단일화 룰 협상팀은 만난 지 하루 만인 지난 14일 협상을 중단했다. 안 후보 측의 협상 중단 조치 때문이었다. 협상은 5일간 헛돌았다. 우여곡절 끝에 19일 재개된 협상은 양쪽 지지층의 기대를 불러모았지만 협상 중단 이전이나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급기야 전주의 야권 지지자 한 명이 단일화를 촉구하며 22일 투신자살을 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그러나 양측은 23일에 만나서도 단일화 방식을 놓고 ‘가상대결+지지도 조사’(안 후보) 요구와 ‘가상대결+적합도 조사’(문 후보) 주장이 부딪쳤다. 일각에선 ‘문재인-안철수 중 누가 단일후보로 적합한가’와 ‘문재인-안철수 중 누구를 단일후보로 지지하느냐’의 차이가 뭐냐는 얘기도 나왔지만 그래도 ‘유불리’를 따진 양측은 한 치의 물러섬이 없었다. 이런 과정 끝에 문 후보가 단일후보로 결정됨에 따라 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만큼의 시너지가 나올 것이냐는 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본지의 16~17일 정례(11차) 대선 여론조사에선 다자대결에서 안 후보를 지지했던 응답자 중에서, 박근혜 후보와 문 후보의 양자대결이 이뤄질 경우 문 후보를 지지하지 않겠다는 비율이 29.8%로 나타났다.

 문 후보 측 관계자는 “안 후보 지지층 상당수가 중도층인 데다 단일화 과정에서 이탈률이 커질 수 있고, 이들을 모두 흡수하는 게 쉽지 않은 과제”라고 말했다. 안 후보의 사퇴로 투표율이 떨어질 수도 있다. 단일화 파기 후 부동층의 기권으로 인해 투표율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문 후보 측은 투표율 65% 이상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목표 달성을 쉽게 자신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안 후보 지지층의 이탈을 막기 위해 문 후보는 안 후보의 새 정치 의지를 공식화할 가능성이 크다. 안 후보도 사퇴 기자회견에서 ‘새 정치’를 가장 강조했다. 그런 만큼 안 후보의 정책을 큰 폭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 단일화 협상은 깨졌지만, 그에 준하는 공조 로드맵을 천명할 수 있다는 얘기다.

 또한 ‘단일후보 선대위 구성’을 목표로 안 후보를 선거운동 과정에 동참시키려 할 것으로 보인다. 안 후보 선대위의 인사들과 지역 조직을 최대한 흡수해야 단일화 과정의 상처를 아물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문 후보가 안 후보와의 가치 연대를 잘 보여줘, 박 후보와의 일대일 대결 구도를 선명하게 가져가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