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선심성 농정은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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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문제는 여전히 농정(農政)의 핵인데다 오랜 농경국가에서 오는 우리만의 특수 정서가 담겨 있다.

여기에 정치적으로도 민감한 문제여서 정부가 전력을 다해 다뤄도 해법을 얻기 힘든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는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서 차일피일하다가 크게 곤욕을 치렀던 쌀 개방의 과거사가 잘 설명해주고 있다.

정부의 올해 쌀 수급 및 가격안정 대책은 그런 점에서 단기대응책은 될 수 있으나 동시에 새로운 숙제를 추가했다는 데서 임기응변적 성격을 못 면하고 있다.

정부는 이번에 세계무역기구(WTO)와의 협약상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는 정부수매량 대신 농협과 미곡종합처리장을 동원해 전체 수매량을 1천3백25만섬으로 늘리기로 했다.

풍년으로 생산량은 늘어 추수기에 쌀값 하락과 쌀값의 계절진폭 축소로 민간의 유통조정 기능 마비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이긴 하다.

그러나 이런 선택의 대가로 추가 재정부담과 함께 쌀 재고의 관리와 처분은 한층 어려움을 안게 됐다.

쌀 생산은 1996년 3천2백60만섬을 바닥으로 매년 3천6백만섬 정도의 안정적 생산을 이뤄온 반면 소비는 급격히 주는 상황이 지속, 쌀 공급과잉이 농정의 우선 과제로 등장한 지 오래다. 한심한 것은 사정이 이런데도 코앞에 문제가 닥쳐서야 허둥대는 농정의 모습이다.

그러니 새만금간척 결정에 영향을 줄까봐 귀찮다고 문제를 덮었고 이번 대책도 내년 선거정국을 앞둔 선심성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쌀은 생산과잉에 따른 재고누증 문제뿐 아니라 오는 2004년에는 WTO와 재협상을 앞두고 있다. 하루바삐 국내생산체제를 정비해 협상력을 높이고 농가소득 보전을 위한 직불제도를 확대하는 등 근본대책이 수립돼야 한다.

정부는 일단 중장기 대책을 곧 내놓을 계획이라 하나 그것이 실천의지가 실리지 않은 탁상 대책이 돼선 곤란하다.

중요한 것은 선심성 농심을 얻는 게 아니라 농업경제의 기반 보호다. 쌀 정책은 한 정권의 차원을 넘어선 정면돌파의 대처가 아니고선 해결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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