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Report] 엔터주, 레드카펫서 미끄러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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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14일 오후 2시20분. 에스엠이 3분기 실적을 공시했다. 매출액은 예상치에 부합했지만 영업이익이 실망스러웠다. 예상치(증권사 평균 217억원)의 절반 수준(117억원)에 불과했다. ‘어닝 쇼크’에 기관투자가가 물량을 쏟아냈다. 그날 장 마감까지 채 한 시간도 안 되는 새 100억원 넘게 팔았다. 주가는 하한가로 밀렸다. 이튿날도, 사흘째 날도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특히 16일엔 기관의 순매도 물량이 987억원에 이르렀다. 이날 에스엠은 코스피·코스닥 시장을 통틀어 삼성전자를 제치고 거래대금(4008억원) 1위에 올랐다. 사흘 새 날아간 에스엠의 시가총액은 5500억원에 육박한다.

 #2006년 2월 7일 오후 1시40분. 하수 배관제 생산업체 뉴보텍은 배우 이영애가 설립할 예정인 ‘주식회사 이영애’(가칭)에 지분 66%를 투자할 예정이라고 공시했다. 이영애가 설립할 회사의 최대 지분과 경영권을 뉴보텍이 확보해 계열사로 편입한다는 계획이었다. 2005년 말 5000원대에 머물던 주가는 ‘이영애 영입설’이 퍼지면서 상승해 이날 2만3000원까지 올랐다. 그러나 공시가 나오자마자 이영애 측이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해 투매가 나오면서 주가는 고꾸라졌다. 한 달여 만에 6000원대로 주저앉았다. 뉴보텍을 끝으로 연예인 이름만 나오면 급등했던 ‘엔터테인먼트주(株)’가 자취를 감췄다.

 ‘엔터테인먼트주 거품 붕괴 2.0’의 서막일까. 14~16일 대표 엔터주인 에스엠의 주가가 사흘 연속 하한가로 추락했다. 한때 시총 1조4000억원에 육박하며 코스닥 ‘넘버 4’를 넘봤지만 사흘 새 40% 가까이 빠지며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한류(韓流)’로 시작해 ‘싸이’로 화룡정점을 찍었던 엔터주 거품이 ‘실적의 역습’으로 꺼지는 모양새다. 앞서 2005년 코스닥 시장을 뒤흔들었던 ‘연예인 테마주’ 열풍이 2006년 초 ‘뉴보텍 사기 사건’으로 꽁꽁 얼어붙었던 때를 연상시킨다. 일부에서는 엔터 업종 전체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한다.

 에스엠의 주가를 끌어내린 건 기관투자가의 ‘변심’이다. 실적 발표 전날까지 순매수하던 기관이 실적 발표일을 시작으로 등을 돌렸다. 16일까지 사흘 동안 기관이 팔아치운 에스엠 주식은 1100억원어치가 넘는다. 2010년 초 5000원에도 못 미치던 주가를 지난달 초 7만원 선까지 끌어올렸던 기관의 물량이 쏟아지자 주가가 급락했다.

 기관 입장에서는 그러나 믿는 도끼(에스엠)에 발등 찍혔다. 영업이익이 문제였다. 3분기 예상치가 평균 217억원이다. 엔터테인먼트 사업이라는 게 일단 인기 제품(가수)을 만들어내면 워낙 마진이 많이 남는 사업이다. 시장에서는 42.7%의 영업이익률을 기대했다. 1000원을 팔면 427원을 남기는 장사를 한다는 얘기다. 보통 상장 기업의 평균 매출액 영업이익률은 5% 남짓이다. 1000원 팔면 겨우 50원 남긴다. 이런 ‘평균’ 기업과 비교하면 에스엠의 수익성은 뛰어나다. 특히 올 들어 조짐이 좋았다. 지난해까지 20% 수준이었던 영업이익률이 올 1, 2분기엔 30%를 웃돌았다. 시장에서는 “아직도 ‘딴따라’로 보이니… 2013년 아시아 대표 엔터 기업으로 도약”(대우증권), “지속적인 팬덤을 창출할 수 있는 세계적 기업”(한국투자증권), “실적이 주가보다 빨리 오른다”(동부증권) 등 극찬을 쏟아냈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를 배반했다. 실제 에스엠의 3분기 영업이익은 117억원에 그쳤다. 영업이익률 22.7%다. 수익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도쿄 돔 이 텅텅 비었다고 하면 그걸 감안해 매출액을 추정할 순 있지만 그 공연에 얼마를 썼는지는 전적으로 회사를 믿을 수밖에 없다”며 “이번처럼 회사가 비용 부분에 대해 알려주지 않는다면 실적 추정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에스엠 측은 “업종 특성상 실적 추정을 할 수 없는 건 우리도 마찬가지”라고 항변한다. 에스엠에서 투자자 관리(IR)를 맡고 있는 서장원 담당자는 “애널리스트에게 가수 해외 공연 일정이나 앨범 판매 현황 등 자료는 충분히 제공하고 있다”며 “일반 제조업처럼 실적 가이던스(추정치)를 따로 알려주거나 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매출 성장세를 보면 에스엠의 사업에는 문제가 없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라며 “3분기 영업이익이 줄어든 것은 ‘동방신기’ 컴백 공연 무대를 화려하게 꾸미느라 돈을 많이 써 생긴 일시적인 문제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개인투자자 사이에서는 “에스엠의 실적을 과다 예상한 애널리스트나 기관투자가가 문제”라는 의견도 나온다. 에스엠을 분석하는 6개 증권사 가운데 4곳이 이달 들어 목표주가를 올렸다. 그러다 실적 발표 후엔 다시 목표주가를 낮췄다. 한 증권사는 일주일 만에 목표주가를 20% 넘게 끌어내리기도 했다. 최웅필 KB자산운용 이사는 “분석을 안 하던 증권사까지 달려들어 경쟁적으로 목표주가를 올리는 등 주가에 거품이 많이 끼었다”고 말했다.

 이제 관건은 엔터주의 미래다. 대체로 2006년과 같은, 엔터주 전반에 대한 신뢰 추락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는 전문가가 많다. 에스엠 주식을 많이 보유한 한 운용사 관계자는 “기관이 내놓는 건 주가 조정을 계기로 차익을 실현하는 물량”이라며 “에스엠의 기업 가치에 대한 근본적 고민 때문에 주식을 팔아치우는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KB자산운용의 최 이사는 “엔터주 전반에 대한 신뢰가 사라졌다기보다는 주가 거품이 빠지는 과정일 뿐”이라며 “오히려 덩달아 올랐던 다른 엔터주 주가도 제자리를 찾는 등 시장이 정화 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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