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터클은 화려하지만...'무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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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사막에 몇 명의 남자들이 걸어간다. 길을 잃은걸까? 아니면 행군중일까? 이들은 하나같이 눈가에 살기를 품고 있으며 거대한 칼을 지니고 있다. 적들을 만난 무사들은 호쾌한 액션을 펼친다. 상대의 복부를 창으로 꿰뚫고, 목을 칼로 가르면서 전투를 벌이는 것이다. 마치 이 무사들은 살기 위해서 싸움을 벌인다기보다 오로지 죽기 위해서 전투를 치르는 것 같다. 영화에서 이 느낌은 거의 들어맞는다. '무사'는 비극적인 결말을 마련해놓고 관객을 기다리고 있으므로.

5개월 동안의 중국로케촬영, 제작비 70억, 스탭인원 3백명. 영화 '무사'가 공개되었다. 이 영화가 화제를 모은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감독이 '비트'와 '태양은 없다'의 김성수 감독이라는 점, 그리고 정우성과 장쯔이 등 한국과 중국의 스타들이 출연한다는 점 등을 들수 있을 것이다. 김성수 감독은 "영화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들이 고난을 겪으면서 점차 영웅이 되어가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라고 연출의 변을 밝힌다.

'무사'는 역사적 맥락을 작품 저변에 깔고 있다. 고려의 무사들은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귀양길에 오른다. 원기병의 습격으로 명군사는 몰살당하고 고려인들만 사막에 남는다. 장수 최정은 목적지를 고려로 정하고 일행을 통솔한다. 혹독한 행군으로 부사 이지헌이 숨지고, 그의 호위무사 여솔은 최정에게 은근한 적개심을 보인다. 고려인들은 명나라의 부용공주를 납치한 원기병과 마주치고 최정은 부용을 구출해 고려로 가는 배를 얻으려는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원기병은 고려인들의 뒤를 끈질기게 쫓고, 결국 고려의 무사들과 한판 격돌을 벌인다.

'무사'는 한국적인 스펙터클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는 내내 고려 무사들과 원기병의 전투를 박진감있게 그리고 있다. 사막에서의 전투장면, 그리고 영화 후반에서 성을 진지로 삼으면서 전투를 벌이는 과정을 세세하게 담아내고 있는 것. 화살이 몸에 박히고, 칼날이 상대의 몸을 가르는 등 영화의 볼거리는 압도적이다. 마치 당시의 전투장면을 고스란히 스크린으로 옮겨놓은 느낌을 남기는 거다. 게다가 아스라한 멜로의 정서, 그리고 신분적 차이를 뛰어넘는 영웅담은 영화 '무사'의 키포인트라고 할만하다.

아마도 영화 '무사'는 구로사와 아키라 등의 감독들에게 빚진 영화라고 봐도 무방할 듯 싶다. '7인의 사무라이'를 비롯해 일본 영화를 해외에 알리는데 큰 공헌을 한 구로사와 아키라의 시대극 영화의 역동성과 비장한 영웅담을 참조한 흔적도 찾을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수많은 인용으로 구성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무사의 전투장면이 홍콩 무협영화를 연상케하면서 흉내내던 이전 한국영화들에 비하면 '무사'는 한국적인 액션을 모색하는 참신한 시도로 보인다.

'무사'는 아쉬움도 남긴다. 무엇보다 영화 스케일에 비해 전체적인 구성이나 짜임새가 눈에 띄게 느슨하다는 점. 액션 활극은 한국영화 사상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역동적이고 힘이 넘치지지만 막상 그 힘이 전달하는 무게가 다소 가볍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아쉬움은 '무사'를 만든 김성수 감독이 '비트'와 '태양은 없다'에서 보여주었던 캐릭터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이번 영화에선 확연하게 줄어들었다는 것에 기인하는지도 모른다. 무사들의 전투는 비장하기 이를데 없지만, 막상 그들이 왜 싸워야만 하는지, 그리고 비참한 최후를 맞아야만 하는지 설득력이 떨어지는 대목이 발견되는 것이다. '무사'는 한국적인 액션과 시대극의 품격을 함께 갖추려는 시도를 했지만 절반 정도는 미완의 상태에서 마침표를 찍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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