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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는 과연 새 정치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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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안철수 후보는 소중한 사회적 자산이다. 혼자 컴퓨터 바이러스와 십자군 전쟁을 치러냈고 백신을 무료로 배포했다. 벤처 중소기업을 성공적으로 키워냈다. 청춘 콘서트를 통해서는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 있는 강사로 등장했다. 정치권에는 존재 자체가 신선한 자극이다. 개혁을 거부하며 누워 있던 정치권이 벌떡 일어서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 자산과 정치적 자산은 다르다. 강사는 주장만 하면 되고 기업인은 돈만 벌면 된다. 그러나 정치 지도자는 책임지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책임과 능력은 몇 달 새 뚝딱 생겨나는 게 아니다. 역사와 공동체를 고뇌했던 경력, 정치·경제·사회 시스템에 대한 지식, 그리고 ‘내가’라는 소명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책임과 능력이 생기고, 그런 후에야 정치적 자산이 될 수 있다.

 경력·지식·소명에서 안 후보는 중대한 시험에 처해 있다. 경력은 부족하고, 지식은 모자라며, 소명은 충분하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안 후보는 ‘새 정치’를 들고 나왔다.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그래도 새 사람이니까 헌 정치보다는 낫지 않으냐고 본인은 주장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정말 그는 새롭나. 그의 언행은 새 정치인가. 유감스럽게도 아니다. 입은 새 정치를 말하지만 발은 헌 정치에 빠져 있다.

 헌 정치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선동이다. 안 후보는 “토목공사가 아니라 사람에게 예산을 쓰겠다”고 했다. 현 정권의 4대 강 공사를 공격한 것인데, 이는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토목공사가 아니라 사람’이라니 토목은 사람을 위한 게 아니란 말인가. 경부고속도로는 노루나 다람쥐를 위한 거였나. 4 대 강은 잉어나 가물치를 위한 것인가. 사람을 위한 게 아니면 왜 주민들이 박수를 치는가. 안 후보가 하려는 한반도 철도도 토목 아닌가.

 헌 정치는 이중성의 정치다. 안 후보는 대학원생 때 부모로부터 사당동 재개발 딱지 아파트를 받았다. 재개발 혜택을 본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용산 재개발은 ‘개발 만능주의’라고 비난한다. 사당동은 축복이고 용산은 재앙인가. 안 후보는 철새 정치를 비판한다. 그러면서도 대표적인 철새를 공동선대본부장에 앉혔다. 안철수의 새 정치는 새로운 새인가 아니면 날아다니는 새인가. 안 후보의 기준은 뭔가. 자신에게 다가온 여인은 애인이고 남에게 다가간 여인은 꽃뱀인가.

 헌 정치는 포퓰리즘이 심하다. 안 후보는 대통령이 되면 제주해군기지 건설 과정에 대해 주민에게 사과하겠다고 했다. 강정마을로 정해진 건 노무현 정권 때였다. 3개 후보지 중에서 주민 찬성이 가장 높아 선정된 것이다. 대법원은 건설 과정에 문제가 없다고 최종 판결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이가 사실관계도 모르고 편향된 시각으로 문제를 키운다. 시위대는 만나면서 정작 기지를 건설하는 해군은 만나지도 않았다. 근거 없이 사과하면 정부가 국책사업을 어떻게 할 수 있나.

 헌 정치의 또 다른 문제는 황당(荒唐)이다. 안 후보는 국민이 가까운 곳으로 청와대를 옮기겠다고 공약했다. 청와대는 한국 현대사가 이뤄진 유적지다. 왜, 언제, 어디로 옮기겠다는 건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 그저 불쑥 소통을 위해 옮기겠단다. 소통 부족이 인물의 문제지 장소의 문제인가. 지금 위치보다 국민에게 더 가까운 곳이 어디 있나. 가깝다면 사람이 많은 강남역으로 옮기겠다는 건가. 마땅한 부지도 없는데 어디로 옮기나. 한강이라도 메울 건가. 황당하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안 후보 측은 국민 토론으로 시기와 장소를 정하겠단다. 국민 토론이 전지전능한 신이라도 되는가. 국민이 토론하면 하야도 할 수 있나. 무책임의 극치다.

 안철수는 여행을 시작했다. 사회적 자산을 넘어 정치적 자산이 되려는 것이다. 그는 건너온 다리를 불살랐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소각(燒却)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정치적 자산이 되려면 새 다리를 놓아야 한다. 경력·지식·소명을 기둥으로 책임과 능력을 깔아야 한다. 쉽지 않은 공사다. 과연 안철수는 새 정치의 토목공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