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미술관 살리기] 1. 국립현대미술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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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 사람들이 하는 말 중에 "공공미술관이 제대로 하면 한국 미술은 반 이상 잘 굴러간다"는 얘기가 있다. 그만큼 국.공립미술관이 우리 미술판에서 맡고 있는 구실은 크다.

하지만 이들 미술관에 애정어린 비판을 보내지 않는다면 한국 미술은 반 넘어 망가진다는 역설이 나온다. 국.공립미술관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을 전문가 지적으로 4회에 걸쳐 알아본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오광수)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또 대한민국의 미술계를 선도하는 상징적인 기관이다. 그러므로 미술관은 자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기획과 예산을 시종일관 투명하게 공개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먼저 해마다 적잖은 예산이 투입되는 미술관 소장작품 구입이 이상하리만큼 비밀스럽게 진행되며, 집행되는 예산의 쓰임과 작품 선정에 관한 의혹들이 계속 증폭되고 있는 실정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는 작품의 미술사적 의미와 가치가 중요함은 물론, 자손 대대로 물려주고 보존돼야 할 국가 차원의 귀중한 자산임에도 불구하고 관련 정보가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연간 40억원에 달하는 예산이 집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다.

전문성을 요하는 작품 구입은 치밀한 기획과 전문 미술인들의 다양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공개적으로 진행돼야 하는 것이 당위다.

그런데 작품 구입의 기준과 방법, 작품 선정과 선정위원의 위촉과정, 구입 가격 등 어느 하나 제대로 알려진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관련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 데 대한 납득할 만한 해명조차 없는 현실이 그러한 의혹들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모든 정보가 원천적으로 봉쇄되고, 선명하지 못한 진행 과정으로 인해 누가 작품 구입에 관계하고 있는지, 관계자들은 어떠한 자격과 방법으로 국가적인 책무를 수행하고 있는지 도저히 알 길이 없다.

게다가 우리를 한층 당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그들과의 접선(?)마저도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며, 평소 친분이 두터운 작가나 화상 혹은 관계자들의 은밀한 청탁이 들어오는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있다는 것이다.

둘째, 국가가 지원하는 작가 작업실인 '창동스튜디오'의 설립에 관한 의혹이다. 문환관광부가 수십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운영하고 있는 '창동스튜디오'는 설립 이전에 단 한번의 공개적인 토론이나 연구도 없이 2002년 어느날 갑자기 문을 열었다.

문화부와 국립현대미술관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몇년 전 문예진흥원이 주관해 국내에서 최초로 시도했던 '강화도.논산 스튜디오' 사업이 완벽하게 실패했던 사실을.

문제는 사업 실패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검토하고 그 결과를 거울삼아 미래를 새롭게 천착해보는 시도 한 번 없이, 오히려 이번에는 상위 기관인 문화부와 미술계를 대표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이 힘을 합쳐 '똑같은' 사업을 재탕하고 나섰다는 사실이다.

미술동네에는 문화부의 실무자들, 미술관의 책임자들, 그리고 몇몇 영향력을 과시하고 다니는 미술인들의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에 대한 부정적인 소문들이 널리 퍼져 있다.

이러한 소문의 사실 여부와 진원지를 따지기 이전에 아름다움이 넘쳐야 할 미술동네에 부끄럽고 치사한 이따위 부정적인 말들이 떠돌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동시에 그 자체가 이미 문제의 심각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관계자들이 분명하게 인식하고 이제라도 이 모든 소문을 말끔하게 씻어 없애도록 투명한 정보 공개가 이뤄지기를 바란다.

하용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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