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으로 통하는 여자 신은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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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조폭이 아니었을까. 대사의 반 이상 육두문자를 거침없이 쓰는 거 하며 날렵한 이단 옆차기, 숨통이 끊어질 것만 같은 카리스마….영화 <조폭 마누라>에서 신은경은 자신을 조폭인'은진'위에 그대로 포개놓은 것 같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혹시 과거에 정말 조폭이 아니었나 의심이 갈 정도다. '형님'이란 호칭이 너무 잘 어울리는 여자 신은경의 조폭 입문서.

웨딩 드레스 입은 여자 조폭

"야, 이 새끼들아! 죄다 술집년들만 끌고 오면 어떡해? 결혼식장이 나이트 개업식이냐?"
눈부실 정도로 하얀 면사포를 쓴 새색시 입에서 나온다는 말이 세상에 이렇게 섬뜩할 줄이야. 여기는 조폭 마누라 차은진의 결혼식장. 아무것도 모르는 말단 공무원 수일과의 결혼식이 진행되곤 있지만 반대파 조폭들의 방해로 결혼식이 과연 … 끝까지 진행될지는.

면사포 뒤로 훤히 드러나 보이는 그녀의 등은 온통 파스로 도배를 했다. 파스 냄새가 벌써 4시간째 그녀 주위를 맴돈다. 온몸에 새긴 용 문신을 가리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기 때문이다. 덕분에 파스로 온몸이 화끈화끈. 가득이나 더운 여름날 얼굴까지 파스 열기가 올라와 연기하는 데 참 힘들었다. 결혼식은 한마디로 요지경. 신부측 하객들은 온통 나가요 걸, 삐끼, 검은 양복 입은'어깨'들뿐이고 축의금을 내기는커녕 오히려 봉투를 받아 가는 요지경이 펼쳐지고 있다.


나랑 결혼하고 싶은 놈 없냐?

참 오랜만에 만나는 신은경. "좆나, 이 씨발 것이… ." 대사의 반 이상이 민망한 육두문자. 하지만 그녀, 너무나 자연스럽다. 혹시 학창 시절에 날고 기는 일진(?)이 아니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다. 조폭 마누라. 얼핏 들으면'조폭의 마누라'인 것 같지만 알고 보니'마누라가 조폭'이라는 뜻이다. 여자 조폭 하면 왠지 부담스럽지만 신은경이 맡았다고 생각하면 고개를 끄덕일 만큼 이 영화는 신은경표 영화다. 신은경 하면 따라다니는 터프하면서 보이시한 그녀만의 캐릭터 때문이리라.

진정한 조폭이 되기 위해서(?) 그녀는 1년 동안 몸 만드느라 참 많이 노력했다. 조폭의 중간 보스로 남자들을 휘어잡으려면 주먹은 필수니까. 액션 연기를 위해서 한양대 체육관에서 3개월 동안 무술 연습도 했다. 하루 4시간씩 1주일에 3번 원진 무술 감독으로부터 직접 액션에 필요한 기본 동작을 익혔다. 말이 기본 동작이지 독한 신은경도 눈물이 쏙 빠질 만큼 정말 힘들었다. 그나마 그 정도니까 고난도 액션 장면을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었단다. 덕분에 다리에 흉터가 잔뜩 생겼지만. 생각해 보니 이제야말로 조폭의 길(?)에 입문한 셈이다.


가위 권법의 전설'차은진'

신은경이 맡은 영화 속'차은진'은 조폭계의 살아 있는 전설. 가위 하나로 암흑가를 평정한 그녀지만 어린 시절 고아원에서 헤어진 언니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가까스로 찾아낸 언니가 위암 말기 환자라는 소식을 접한다. 죽음을 앞둔 언니의 마지막 소원은 바로 은진이가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사는 것.

고민하던 은진은, 무려 58회나 맞선을 보고도 애프터 신청 한번 변변히 받지 못한 동사무소 말단 직원 수일(박상민)과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한다. 로맨틱한 사랑을 꿈꾸던 한 남자가 조직 폭력배인 아내를 맞이했으니 앞으로 일어날 해프닝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코미디 천국이다.

조폭에서 여형사로

4달간의 힘든 조폭 생활을 끝내고 얼마 뒤부턴 새 영화 찍는다. 연쇄 살인범을 뒤쫓는 특수부 형사의 영화 <이것이 법이다>. 그녀만의 보이시한 성격 때문인가. 이번엔 컴퓨터 전문 여형사를 맡았다. 조폭에서 형사로, 참 대단한 극적 변화다. 하지만 새로운 배역을 만날 때마다 고스란히 자신을 그 배역에 포개놓는 그녀만의 힘은 여전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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