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외국인 투자기업들 자유무역지역 이전 ‘비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16일 오전 9시 이천시 패션물류단지에서 열린 경기도 실·국장 회의장. 회의장을 짓누르는 무거운 침묵을 깨고 조병돈 이천시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한 지역에 잘 있는 기업을 억지로 빼다가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도록 하는 게 이 법의 취지는 아니잖습니까.” 외국인 투자촉진법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는 “현행 법은 지방자치단체들을 서로 가진 파이를 빼앗아 가는 제로섬 게임으로 내몰고 있다”고 말했다.

 28년간 이천시에 터를 잡아온 대형 외국인 투자기업이 짐을 챙기고 있다. 싱가포르 자본을 100% 투자해 설립된 반도체 제조기업인 스태츠칩팩코리아다. SK하이닉스에 이어 이천 지역에서 두 번째로 큰 업체다. 이 업체가 떠나면 당장 수십억원의 세금 수입 감소와 지역경제 공동화가 예상된다. 조 시장이 목소리를 높여 반대하는 이유다.

 스태츠칩팩코리아 이전 문제는 지난해 처음 불거졌다. 이 회사가 SK하이닉스로부터 빌린 공장 부지의 임대차 계약기간은 2015년 6월까지다. 수도권 자연보전권역으로 묶여 있는 이천에서 3만8000㎡의 개별 공장 신·증설은 법적으로 불가능했다. 이천시는 새로 산업단지를 조성해 이 업체의 공장 이전 부지를 마련해 주기로 했다.

 이천시는 공업용수와 4만㎾급 고압 전력을 공급하고 공장부지도 싼값에 제공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300억원의 지방채를 발행한다는 방침도 정했다. 이천시로서는 전례가 없는 특혜였다. 그러나 이 업체는 한발 나아가 토지 무상임대 등 자유무역지역과 같은 수준의 혜택을 요구했다. 이천시 관계자는 “우리 시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였지만 업체 요구를 들어주려고 정부로부터 관련 시행령의 개정 약속까지 받아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도 물거품이 될 전망이다. 이 업체가 인천시 영종도의 자유무역지역으로 공장을 옮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기 때문이다. 자유무역지역으로 이전하면 업체는 법인세·관세·재산세 등 400억원이 넘는 세금 감면과 50년간 토지를 공짜 수준으로 사용할 수 있는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외국인 투자촉진법상 외국인 투자지역의 인센티브 조항 때문이다.

 문제는 이미 국내에 들어와 기업 활동을 벌이고 있는 외국인 기업들도 자유무역지역으로 이전만 하면 이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더 많은 혜택을 좇아 짐을 싸는 기업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경기도와 이천시가 내놓은 대책은 기존의 외투 기업이 자유무역지역으로 이전할 경우 인센티브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다. 또 현재 외투 기업이 자리 잡은 곳을 외국인 투자지역으로 지정해 자유무역지역과 동일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천시 관계자는 “국가적으로는 외투 기업이 국내에서 이곳 저곳으로 옮기면 손해만 될 뿐 더 큰 이익을 주지 않는다”며 “현재 위치에서 기업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게 윈윈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유길용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