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 그 왜곡의 실체를 찾아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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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주제작사의 5년차 PD인 박성미(33) 씨는 지난 6개월 동안 놀랄 만한 경험을 했다. 서강대 영상대학원에 다니며 명성황후 관련 영상교육물을 준비하던 지난해 12월만 해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파고들수록 의문투성이랄까. 타계한지 1백년 정도밖에 안됐겄만 진본(眞本) 사진 한 장 없는 명성황후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1996년까지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 번듯하게 실렸던 명성황후 사진이 97년에 갑자기 사라진 이유는 뭘까. 명성황후에 대한 저간의 부정적 인식은 어디에서 비롯했을까.

그러기를 여덟달. 박PD는 KBS로 달려가 가편집본을 공개했고, KBS 관계자는 바로 'OK 사인' 을 냈다. 11일 '수요기획' 시간(밤 11시35분) 에 방영되는 다큐멘터리 '다시 살아나는 국모, 명성황후' 는 이렇게 제작됐다.

우선 형식이 주목된다. 외주 프로그램으론 드물게 가상 스튜디오와 3차원 그래픽을 활용, 시청자의 이해를 돕는다. 예컨대 명성황후 시해 장면, 장례식 등을 입체 영상으로 복원했다. 그의 주치의였던 언더우드 여사가 남긴 수기를 토대로 명성황후와 언더우드의 가상 대화도 시도했다.

그래도 가장 돋보이는 요소는 치밀한 취재다. 명성황후의 친필 서찰집, 시해 당시 외국 외교관들의 각종 기록 등을 일일이 훑었다. 예컨대 당시 영국 공사였던 힐리어가 미국인 군사교관과 러시아인 토목기사의 증언을 토대로 본국에 보고했던 '시해 도면도' 등을 소개한다.

박PD는 낭인 중 한 명이자 『근대 조선사』『조선왕국』『대원군전』 등 한국 관련 책을 다수 남겼던 기쿠치 겐조의 얼굴을 최초로 공개하고, 또 그의 행적을 상세하게 추적한 점을 가장 큰 소득으로 꼽는다. 대원군과 끝없이 불화를 일으키며 조선을 멸망으로 이끈 '주범' 이 명성황후라는 인식은 기쿠치로부터 시작됐다는 것.

박PD는 프로그램을 위해 일본 방위청의 군사자료실을 뒤져 명성황후 시해와 관련된 일본의 재판기록, 한.일합방 직후 일본측이 만든 기념사진첩 등을 찾아내는 열성을 보였다. 그는 "일본은 아직도 명성황후 시해를 인정하지 않고 있어요" 라는 말로 결론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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