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향악단 "음반제작 내손으로"

중앙일보

입력

런던 바비칸센터에서 열리는 런던심포니(LSO) 공연에선 무대 위에 마이크가 몇 대 놓여 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확성이나 모니터용이 아닌 녹음용 마이크다. 연주를 시작하기 직전 관계자가 무대에 나와 휴대폰을 끄는 것은 물론 연주 도중 기침도 가능하면 참아달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공연실황이 녹음돼 CD로 나온다는 설명과 함께.

런던심포니는 지난해부터 공연실황을 음반에 담아 'LSO 라이브' 라는 자체 레이블로 시장에 내놓고 있다. 인터넷과 우편으로 구입할 수 있는 염가 음반이다.

오는 2003년 베를리오즈 탄생 2백주년을 앞두고 LSO 수석지휘자 콜린 데이비스경이 4년에 걸쳐 해오고 있는 시리즈 공연 '베를리오즈 오디세이' 도 LSO라이브로 출시되고 있다. 특히 '환상교향곡' 은 최근 일본 클래식 차트 10위권에 들 정도로 인기다. 런던심포니는 실황 녹음에 참가한 단원은 물론 지휘자.독주자들에게 녹음에 대한 개런티는 따로 주지 않고 판매수익금에서 음반 제작비를 뺀 나머지를 나눠 갖는다.

최근 실황녹음 음반을 자체 제작하는 오케스트라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메이저 음반사들이 관현악 녹음을 꺼리기 때문이다. 오페라나 성악 반주를 부탁하는 것도 좀처럼 드물다. 클래식 음반시장의 침체로 새음반 녹음에 따른 제작비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음악인 노조의 입김이 거세 교향악단 단원들의 파업이 자주 일어나고 있는 미국에선 웬만해선 개런티를 깎을 수 없다. 그래서 레코딩에서 짭짤한 수입을 올리던 오케스트라들이 자체 녹음이라는 궁여지책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런던심포니뿐 아니라 미국의 필라델피아.세인트루이스.오리건 오케스트라, 영국 로열 리버풀 필하모닉,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오케스트라, 일본의 재팬필하모닉도 자체 레이블로 CD를 제작하고 있다. 뉴욕필은 '번스타인 라이브' 에 이어 '미국 축전' 시리즈를 내놓았다. 세계 최고의 교향악단임을 자부하는 빈필하모닉도 온라인 도매상인 안단테 닷컴(andante.com) 과 손을 잡았다.

최근 CD 녹음.제작 기술의 발달로 실황녹음으로 얼마든지 깨끗한 음질의 음반을 만들 수 있게 된 것도 한 요인이다. 기침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도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게 된 것.

하지만 자체 음반 제작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재킷 디자인과 곡목 선정.판매기법에서 마케팅 감각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음악감독 볼프강 자발리시) 는 리스트의 교향시를 담은 CD를 시리즈로 발매했는데, 지난해 가을부터는 노사분규의 여파로 음반을 구하기가 힘들어졌다. 올부터 외부 기관에 판매를 맡겼지만 구입하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오케스트라들은 교향악단과 청중을 직접 연결해준다는 점에서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클래식 음반시장에서 새음반 출시 빈도가 낮아지고 있지만, 값진 공연실황을 담은 자체 제작음반이 나온다는 것은 음악팬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