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서 도밍고 지휘자로 깜짝 변신

중앙일보

입력

지난 1일 오후 8시30분 베를린 올림픽경기장 옆 발트뷔네(숲속의 무대) . 한국의 가을처럼 청명하고 선선했던 이날 밤 2만2천명의 베를리너들은 테너에서 지휘자로 변신한 플라시도 도밍고와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사라 장) 가 엮어내는 '스페인의 밤' 속으로 푹 빠져 들었다.

이곳은 1984년부터 베를린필이 정규시즌을 끝내고 휴가에 들어가면서 야외공연을 선사하는 무대. '지휘자' 도밍고의 베를린필 데뷔이기도 했던 이날 공연은 '스페인을 주제로 한 음악' 으로 꾸며졌다. 장영주는 사라사테의 '지고이네르바이젠' '카르멘 환상곡' 을 연주했다.

이날 공연은 야외음악회에서만 누릴 수 있는 청중의 특권이 유감없이 발휘됐다. 필하모니홀이 요구하는 엄숙주의나 격식은 간 곳 없고 자유.유쾌.여유만 남았다.

청바지와 스웨터 같은 간편한 복장에 빵과 맥주.포도주 등을 즐기며 편안한 자세로 베를린필을 감상했다.

'스타 지휘자' 도밍고는 시종 유쾌한 웃음을 선사했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스페인 행진곡' 을 지휘한 뒤 "슈트라우스의 '특별 허가' 를 받아 빈 리듬을 스페인 리듬으로 바꿨다" 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

이곳 발트뷔네의 전통은 청중이 박수를 치고 휘파람도 불면서 함께 하는 링케의 '베를린의 공기' 를 앙코르곡으로 연주하는 것. 도밍고가 갑자기 지휘봉을 내려놓고 마이크를 잡고 객석으로 내려와 청중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다소 어색한 지휘자의 '가면' 을 벗고 테너로 되돌아온 도밍고의 깜짝쇼에 모두 일어나 박수를 치며 흥겨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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