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를 담보로 금리 1% 혜택 보려는 농가 줄 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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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2호 20면

경기도 안산에서 금속소재 생산업체를 운영하는 김수철(가명) 사장은 얼마 전 거래 은행한테서 연 5%대 금리로 대출해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수출 둔화로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 연 7~8%의 신용대출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기에 어리둥절했다. 은행에서 제안한 건 다름 아닌 동산(動産)담보대출이었다. 이 회사가 원자재로 사다 놓은 금속 재고자산을 담보로 대출을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김 사장으로선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15억원의 회사 운영 자금을 대출받아 숨통을 틔울 수 있었다.

동산 담보대출

불황의 그늘이 깊어지자 기계는 물론이고 한우나 쌀 등을 담보로 급전을 구하는 중소기업이나 농가가 늘고 있다. 부동산담보대출과 신용대출로도 돈이 모자란 이들이 너도나도 담보가 될 만한 걸 동원하기 때문이다. 신용대출보다 1~2%포인트 낮은 대출금리도 인기 포인트다.

동산(動産)이란 토지·주택 같은 부동산과 달리 운반이 가능하면서 재산 가치가 있는 물건을 통칭한다. 지난 8월 8일 시중은행에서 동산담보대출 상품이 판매되기 시작한 뒤 이달 5일까지 총 2100억원의 대출이 나갈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금융감독원 이성재 기업금융개선1팀장은 “8월부터 연말까지 넉 달간 2000억원 정도 대출이 나갈 것으로 예상했는데, 두 달 만에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었다”고 말했다.

동산담보대출은 올해 6월 ‘동산·채권 등의 담보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가능해졌다. 미국의 경우 1962년 도입돼 전체 기업 대출 금액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다. 일본도 2005년 도입 후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 국내에서 지금과 같은 추세로 성장한다면 4, 5년 뒤엔 신용대출·주택담보대출에 이어 제3의 큰 대출 영역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전망된다.

담보물건은 크게 네 종류로 나뉜다. 공장 기계는 유형자산, 철근 같은 원자재는 재고자산에 속하고 소·쌀이나 냉동 생선은 농수축산물로 분류된다. 기업이 받을 외상판매 대금이라 할 매출채권도 담보물건에 속한다. 금리는 평균 연 5%대지만 기존 신용도나 은행 정책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담보물건 종류에 따라서는 매출 채권의 금리가 약간 높을 뿐 다른 담보물건들은 금리 차가 거의 없는 편이다.

담보물건의 가치를 다소 보수적으로 평가한다는 여론도 있다. 동산담보대출의 담보물건 가치는 감정평가사가 평가한다. 그렇다고 감정가만큼 대출해 주진 않는다. 담보가치인정비율(LTV)이 40% 이하로, 지방 기준 부동산담보대출 LTV 60%보다 훨씬 낮다. 충남 보령에서 한우를 키우는 이정학 서해농장 대표의 사례를 보자. 그는 한우 150두를 담보로 농협은행에서 1억원을 빌렸다. 평소 신용도가 높아 대출 금리는 연 3.86%로 낮은 편이었다. 원래 한우 150두의 시장 가격은 4억5000만원가량이다. 하지만 감정평가사가 담보가치를 3억원으로 책정해 LTV 40% 이하를 적용받아 1억원만 대출받은 것이다.

은행권에서는 동산이 부동산과 달리 담보물이 안정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다소 보수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는 반론도 나온다. 예를 들어 소 같은 가축은 질병이 나서 병들거나 죽을 경우 담보가치가 사라진다. 이 때문에 은행에서는 축산물의 동산담보대출을 받을 때 가축재해보장보험 가입을 권유하기도 한다.
살아 있는 가축 중에서 소만 담보가치가 인정된다는 점도 특이하다. 소는 값이 비싸 한 마리씩 인식표를 달아 관리하기 때문에 어느 소가 담보로 잡혔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값이 싼 돼지·닭은 개별 관리를 하지 않아 담보가치를 쉽게 매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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