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매력적이지만 위험천만한 리빌딩의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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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다저스는 98년 말 케빈 브라운과의 1억불짜리 계약을 신호탄으로 션 그린, 디본 화이트, 카를로스 페레즈같은 고액연봉선수들의 영입에 힘을 기울였다. 다저스의 전임 단장이었던 케빈 말론 단장은 "다저스가 뉴욕 양키스와 월드시리즈를 치루는 것을 상상해보라"라며 강해진 전력에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나 다저스는 FA사냥꾼이 된 이후에도 다저스는 정규시즌에서 지구라이벌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것을 바라봐야만 했다.

이번 스토브리그에서도 대런 드라이포트, 앤디 애시비라는 좋은 투수를 잡아둠으로써 성적향상을 기대했던 다저스는 두 선수의 부상으로 인하여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실 다저스는 수많은 고액연봉선수들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전력으로는 월드시리즈 우승은 고사하고 포스트시즌 진출 가능성도 그리 높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판단하고 있다.

최근 미국과 한국에 있는 상당수의 다저스팬들은 다저스가 리빌딩을 함으로 인해서 현재의 팀구조를 혁신해야 한다고 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제는 메이저리그를 좋아하는 한국팬들도 많이 들어본 리빌딩이란 무엇일까?

리빌딩이란 영어 원문(Rebuilding)처럼 건물을 다시 짓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야구에서도 리빌딩은 팀의 구조를 바꾸는 것으로 간판선수를 이적시키고 팀의 색깔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일컫는다. 그러나 요즘 들어서는 고액연봉을 받는 베테랑선수들을 이적시키는 대신에 유망주들을 영입하여 몇 년 후를 기약하는 선수운용정책으로 그 의미가 약간씩 변하고 있다.

97년 월드시리즈 우승이후 핵심선수들을 내다팔고 투수유망주를 수집해서 올시즌 5할승률을 거두고 있는 플로리다 말린스가 대표적인 리빌딩의 사례이다. 또한 플라이볼 타자를 내보내고 라인드라이브형 타자를 영입하면서 좋은 투수의 영입에 혼신을 기울여서 고도가 높다는 홈구장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하고 있는 콜로라도 로키스도 넓은 의미에 있어서 리빌딩의 좋은 예이다.

그렇다면 리빌딩은 팀성적이 부진한 팀이 선택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실제로 팀성적이 부진한 경우, 단장은 두 가지 갈림길에 서게 된다. 좋은 선수를 영입함으로 인해서 전력을 강화하거나 간판선수들을 내보내면서 유망주들을 수집해야 한다. 여기서 빨리 판단을 내리지 못하면 팀은 부진의 터널을 걷게 된다. 그리고 메이저리그 대부분의 팀들, 특히 운영자금이 풍부하지 못한 팀들은 대체로 후자를 선택한다.

리빌딩의 어려움은 그 과정에 있다. 우선 유망주들이 팀의 기대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안정된 팜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는 리빌딩을 하는 팀의 산하 마이너리그 구단이 유망주들이 부상당하지 않고 좋은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는 말과 일치한다. 뉴욕 메츠는 더블 A 산하구단인 빙햄턴이 추운 날씨로 수많은 투수유망주들을 수술대에 올려놓았다는 점에서 낙제점을 피할 수 없다.

다음으로는 투수유망주와 타자유망주의 성장속도를 정확하게 맞춰야 한다. 이는 페이롤을 함부로 끌어올릴 수 없는 영세한 메이저리그 구단에게는 반드시 이뤄내야 할 목표이다. 사실 투수는 능력과는 관계없이 어느 정도의 경험을 필요로 하지만, 타자는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는 순간부터 빅리그에서 활약할 수 있다. 이러한 시간차는 리빌딩을 계획하는 팜 디렉터에게는 상당한 고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부유한 구단이라면 좋은 유망주들이 투수 또는 타자에 편항되어 순식간에 양산되는 경우에 부족한 부분은 자유계약선수의 영입이나 트레이드를 통해서 나머지 한부분을 보강할 수 있다. 그러나 영세한 구단은 어느 한 부분의 유망주들이 리그 정상급으로 성장하더라도 다른 부분의 보강을 할 여유가 없다. 그렇다고 다른 부분의 유망주들이 정상급으로 성장하기를 기다리기엔 이미 정상급의 선수로 성장해버린 유망주들의 연봉을 감당할 수 없다.

90년에 접어들면서 리빌딩에 들어갔던 캔사스시티 로열스는 마이크 스위니, 자니 데이먼, 마크 퀸 등 타자유망주들이 성장하여 메이저리그 최상급의 공격력을 자랑했지만, 카일 스나이더를 비롯한 투수 유망주들의 성장이 이에 미치지 못해서 현재도 리그에서 두드러진 성적을 보여주지 못한 채로 강팀들의 트레이드 요구에 지쳐가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리빌딩의 완성을 위해서 유망주들을 이끌어 줄 수 있는 베테랑 선수가 필요하다. 젊은 선수들이 빅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기 시작하면 팀플레이를 외면한 채 개인성적에 치우치는 모습을 보여주기 쉽다. 이런 상황에서 경험많고 모범이 되는 베테랑 선수가 클럽하우스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하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선후배의식은 뚜렷하며, 유망주들은 베테랑의 모범적인 선수생활을 보고 배우면서 팀성적을 향상시키는데 노력할 수 있다.

플로리다 말린스가 최근 젊은 선수들의 성장과 더불어서 우승경험이 있는 고향선수인 찰스 존슨을 영입했다는 것과 신시내티 레즈가 이미 전성기를 지난 배리 라킨에 고액의 연봉을 제공하면서까지 잡고 있는 이유는 바로 모범적인 베테랑 선수를 통해서 젊은 선수들에게 바람직한 메이저리그 선수에 대한 이상향을 심어주려는데 그 의의가 있다.

리빌딩은 구단에 있어서는 승부수를 던지는 것과 다름없다. 일정기간 동안 성적의 하락을 감수하고, 팬들의 외면과 항의를 감수해야 한다. 게다가 유망주들이 언제 정상급의 선수로 성장해 줄 것인가를 예측하기도 불가능하고, 더욱이 팀캐미스트리까지 단단하게 하면서 리그정상급의 성적을 올릴 정도의 팀을 만드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고 봐도 될 것이다.

리빌딩은 가장 안전한 길이 아니라 가장 위험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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