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반도체 감산 촉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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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여름을 알리는 소서(小暑)가 지났다. 장마철 찌푸린 하늘은 가까운 산자락도 내보이질 않는다. 경제 형편도 요즘 날씨 같다. 보이는 게 없고 다들 시들하고 기운이 없다.

증시부터 그렇다. 미국 증시의 판박이다. 지난주 내로라 하는 미국 기업의 실적이 죽을 쑤고 실업률이 뛰자 나스닥, 다우 가리지 않고 고꾸라졌다. 그 여파가 한국 증시에 직격탄으로 날아왔다. 금주에도 상황이 달라질 것 같지 않다. 5일의 콜금리 인하 효과는 거론하는 사람도 없다. 성급하게 기대했던 썸머랠리(여름휴가철 이전 주가 상승)도 이미 기대권 밖으로 사라졌다.

환율도 걱정이다. 하이닉스반도체와 한국통신의 외자유치 성공으로 달러가 들어와 원화 환율이 안정되는 것을 반길 상황만은 아니다. 일본 엔화의 약세가 이어지며 달러당 1백30엔대에 육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과 경쟁하는 우리 제품의 수출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아져 그렇지 않아도 헉헉대는 수출의 뒷덜미를 잡게 생겼다.

개당 1달러대로 떨어진 D램 반도체 가격은 하이닉스반도체의 목숨 줄과 경기회복의 열쇠를 쥐고 있다. 다급한 하이닉스반도체가 금주에 생산 감축을 결정할 가능성이 있다. 빅3인 삼성전자와 마이크론테크놀로지가 동조해야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라서 두 곳의 움직임이 관심거리다.

통신업계에 두 가지 이슈가 있다. LG텔레콤과 하나로통신이 협력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에 차세대이동통신(IMT-2000)동기식 사업자 선정이 앞당겨질 것이다. SK텔레콤(011)과 SK신세기통신(017)의 6월 말 시장점유율이 공정거래위와 합병 조건으로 약속한 50% 미만을 지킨 점이 10일 발표될 예정이다.

이를 계기로 그동안 가입을 사양하며 점유율을 낮춰온 011이 시장탈환 작전을 펼 것이다. 이는 또 후발업체를 자극해 길거리 휴대전화 가입 권유 경쟁이 더욱 극성스러워질 수 있다.

11일은 대신생명의 운명이 판가름나는 날이다. 금융감독원의 부실금융기관 지정 방침에 모기업인 대신증권이 의견서를 내는 시한인데, 대신증권은 포기할 움직임이다.

국회는 오늘도 공전하고 민생과 경제는 뒷전이다. 여야가 함께 내놓은 기업구조조정촉진법도 지난달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키지 않았다. 고리채에 시달리는 서민 보호를 위해 이자를 제한하겠다는 법안도 여의도에서 잠자고 있다. 하반기 회사채 시장을 살리기 위해 투신사더러 신용이 떨어지는 회사채를 모아 팔게 하고, 이를 사는 사람에게 세금을 깎아주기로 한 것도 국회에서 법이 통과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미리 돈을 받고 고객을 확보한 투신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울상이다.

90년만의 지독한 가뭄은 해갈됐지만 우리 경제의 가뭄은 아직 심각하고, 한동안 이어질 것 같다. 수출과 경기(회복), 주가가 모두 미국만 바라보고 있다. 우리 경제는 언제나 천수답 수준을 벗어날 것인가.

양재찬 경제부장 jay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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