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24년만에 TV 복귀한 장욱제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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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밑으로 내려오는 반바지에 길게 올려신은까만양말, 금색 팔찌와 알록달록 현란한 무늬의 남방까지. 더벅머리 한 가운데 부스럼 자국을 하고, 팔자걸음으로 비틀거리던 70년대의 영구가 강원도 춘천시 소양동의조그마한 동네에서 허풍이 심한 호사가 종태로 변모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70년대 초반 장안의 화제를 모았던 KBS 일일드라마「여로」의 영구 장욱제(60)씨가 24년만에 안방극장에 모습을 드러낸다.

오는 21일부터 방송될 SBS 새 주말드라마「아버지와 아들」(극본 박진숙. 연출김한영)이 그의 `제2의 연기인생'을 열어줄 작품. 여기서 그는 주인공 태걸(주현 분)의 죽마고우 종태역을 맡았다. 오랜 세월 연기와 떨어져 살았기 때문인지 야외 촬영중간중간 그의 표정에는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하자 예전의 관록을 말해주듯 여전히 `녹슬지않은' 연기가 되살아났다.

"TV출연을 많이 망설였습니다. 오랜만에 나와 시청자들에게 공연한 실망감만을안겨주게 될까봐 두려웠던거죠. 하지만 올해 초 악극「여로」를 공연하면서 일기시작한 연기에 대한 열정이 저를 안방극장으로 잡아끌더군요." 춘천의 드라마 촬영현장에서 만난 장씨는 "앞으로 남은 인생을 연기자로 마무리짓고 싶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가 이번 드라마에 출연하게 된 것은 연출자 김한영PD와 작가 박진숙씨가 악극「여로」에서 그의 모습을 눈여겨본 뒤, 지난 5월 같이 일해보자는 제의를 해왔기때문. 마침 석달간 전국을 순회하는「여로」공연을 성공리에 마치면서 연기자로서자신의 가능성에 다시 한번 눈을 떴던 그는 잠시 고민의 시간을 가진 뒤, 과감히 출연결정을 내렸다.

"제 의사에 따라 연기를 계속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시청자들이 저를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지속적인 출연이 불가능하니까요. 열심히 해서 시청자들이 원하는연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장씨가 앞으로 그려나갈 연기자상은 드라마에서 감초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재치있는 연기자다.

그는 젊은 탤런트들이 싱싱한 젊음과 멋을 보여준다면 나이든 탤런트들은 연기를 보여줘야한다며 극중 종태의 비중이 그리 크지 않지만 전혀 불만이 없다고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코믹한 개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사람좋고 눈물많은 종태라는 인물이 마음에들었어요. 앞으로도 이런 배역이라면 대환영입니다. 시청자들 입에서 '저 사람만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말이 나오도록 연기하고 싶습니다."

장씨는 동국대 연극과를 졸업하고 지난 64년 KBS 4기로 입사한후 순탄한 연기자의 길을 걸었다. 최고의 히트작 「여로」외에도 「의리의 사나이 돌쇠」,「열풍지대」,「10분쇼」등 수많은 드라마에 출연하며 60~70년대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후 77년 MBC 드라마「타국」을 끝으로 그는 연기에서 멀어졌다. 관광, 건설사업을 주업종으로 하는 파라다이스 그룹에 입사해 새로운 인생에 도전했던 것. 어렸을 적부터 꿈이 사업가였던 그는 37세라는 늦은 나이에 입사한 뒤, 6년만에 계열회사인 파라다이스 면세점의 사장이 되며 초고속 승진의 길을 밟았다.

그리고 지난 98년 사장직을 사임한 뒤 현재 장인터네셔널이라는 무역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연기자의 길에 다시 들어서면서, 회사업무의 70%가량은 이사에게 위임한 상태.

"사업과 연기를 병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머릿속에 사업에 관한 생각이 들어차있으면 대사가 외워지지 않거든요. 앞으로 저의 본업은 연기입니다. 회사에서는 아주 중요한 사안에 관해서만 제 목소리를 낼 생각이지요."

(춘천=연합뉴스) 최승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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