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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난민 사태에 대비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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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일러스트=박용석]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이런 상황을 가정해보자. 소규모로 시작된 시위는 얼마 지나지 않아 군중이 참가하는 반독재 운동으로 발전해 철옹성 같았던 독재정권을 뒤흔든다. 정권은 시위를 중단시키기 위해 잔혹하고도 무자비한 진압에 나서 수천, 수만 명의 국민을 학살한다. 심지어 반정부 세력 중심지에 대한 식량 공급마저 끊는다. 난민들이 나라를 떠나기 시작한다. 그들은 CNN이나 다른 외국 방송망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린다. 시위가 시작된 지 9개월 뒤 정권은 통신망을 마비시키고 유선전화를 먹통으로 만든다. 국민은 이에 굴하지 않고 휴대전화를 이용하면서 현지 참상을 촬영해 각지에 전송한다.

 이를 본 국제사회는 엄청난 인권유린에 분노해 유엔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해 정권에 대한 경제제재를 모색한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해 결의안 채택이 좌절된다. 이웃 국가는 변경에 난민캠프를 세워 살기 위해 국경을 넘어오는 수천, 수만 명의 이웃 국가 주민을 수용한다. 국경 개방과 강제 송환 금지, 무제한 체류 허용, 식량과 안식처 제공 등의 조치가 이어진다. 독재정권은 이를 중대 위협으로 간주하면서 난민 월경을 막기 위해 국경에 지뢰를 매설한다. 이웃 국가들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이성을 잃은 독재정권의 국민 학살을 중지시키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 달라고 호소한다.

 이러한 상황은 언뜻 북한 붕괴 시나리오로 들릴 수도 있다. 실제로 이런 일련의 묘사는 북한 난민 위기와 관련해 내가 참가했던 도상 연습과도 흡사하다. 하지만 여기에 묘사된 상황은 가정이 아닌 실제 상황이다. 사실 이는 2011년 11월 터키 정부가 시리아 난민을 위한 임시 보호시설을 설치한 901㎞ 길이의 터키-시리아 국경에서 진짜로 벌어진 상황이다. 현재 10만 명에 이르는 시리아 남녀와 어린이들이 가혹한 정권을 피해 국경을 넘어 난민캠프에서 거주하고 있다. 시리아의 또 다른 이웃 국가인 레바논과 요르단으로 탈출한 수만 명의 난민이 더 있다. 이는 글로벌 규모의 인도주의적 위기에 해당한다.

 한국인들은 이 참사를 곰곰이 살펴봐야 한다. 이 위기가 어떤 상황으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한국인들은 이 사태에서 이미 여러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만일 북한 난민으로 인해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한국은 이를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교훈은 첫째, 한국은 상당수 난민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한다. 북한 내부 상황을 보면 분명 이런 준비가 필요하다. 터키의 경우 처음엔 가뭄에 콩 나듯 소수 시리아 난민만 들어왔다. 하지만 곧 사태가 보다 심각해지면서 난민이 강물처럼 흘러 들어왔으며 이어서 홍수처럼 쏟아졌다. 터키로 들어온 난민의 숫자는 지난 5월과 8월 사이에 81% 증가했다는 것이 유엔난민기구(UNHCR)의 보고다.

 한국은 처음엔 대여섯 군데의 난민캠프만 열겠지만 조만간 넘쳐나는 북한 난민 때문에 더욱 많은 캠프를 마련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터키는 처음에 7개의 난민캠프로 시작했으나 곧 10만 명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확대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 캠프를 유지하려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비용이 든다. 터키는 여기에 이미 2억 달러(약 2220억원)를 썼다.

 둘째, 난민 상황 때문에 남북한 간 군사적 충돌이 늘어날 것이다. 북한 당국은 지금 시리아가 하고 있는 것처럼 난민의 월경을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게 뻔하다. 일부를 본보기로 처형함으로써 추가 탈출을 저지하려고 할 것이다. 시리아군은 요르단 국경에서 난민들에게 총질을 했으며 터키 국경에는 지뢰를 매설했고 자국 측 국경지대에서 경계 너머에 있는 난민촌을 공격해 무고한 터키인의 목숨까지 앗아갔다.

 터키는 이러한 습격에 대해 국경 너머 시리아 마을에 대한 포격을 포함한 군사적인 보복으로 대응했다. 여기에서 교훈은 북한 난민 위기를 인도적인 상황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는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대단히 불안정한 군사적 상황을 유발할 수 있다.

 셋째, 북한 난민을 받아들일 수 있는 주변국(한국·중국에 러시아도 가능할 것이다)들은 자국이 아닌 북한 영토에 난민캠프를 위한 완충지대를 설치할 수 있도록 유엔 지원을 모색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목적은 수십만 명의 난민이 한 나라에 몰리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북한이 한국의 난민캠프를 공격할 가능성을 줄이는 효과도 있다. 터키는 이러한 해결책을 모색했지만 유엔이 신속하게 대응하지 않음으로써 무산됐다. 유엔의 지원을 얻는 것은 넷째이자 시리아 위기에서 한국민이 얻을 수 있는 가장 우울한 교훈이다.

 이런 상황에선 인도적 지원을 해오던 나라들이 곧 국경을 닫을 수밖에 없다. 상황은 수습 불가능한 지경으로 내달릴 것이고 자국민의 안전에도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실제 터키는 이달 중에 국경을 폐쇄하겠다고 이미 발표했다. 그럴 경우 수만 명의 시리아 난민이 정부군의 공격을 받기 쉬운 자국 국경지대에 남게 된다.

 한국인들은 북한 동포들이 이와는 다른 상황을 맞게 될 것이라고 믿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상황을 감안하면 일단 위기 상황이 벌어졌을 때 탈북하는 북한 난민의 규모는 시리아보다 훨씬 클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위기상황에 대한 대비는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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