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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법 문제, 나무 아닌 숲을 봐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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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조선대 이윤배 교수의 17일자 '사립학교법 개정은 이를수록 좋다'는 글은 법 개정을 집요하게 압박하고 있는 측의 상투적인 주장만 있을 뿐 개정을 반대하는 주장에 대한 논리적 반론은 찾아보기 어렵다.

사학인들이 열린우리당의 사학법.초중등교육법.고등교육법 개정안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열린우리당 안대로 개정될 경우 교육이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채 퇴보하고 말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열린우리당 개정안은 학교 구성원들로 하여금 재단이사 3분의 1을 추천(법으로 강제해서 임명이나 다름없다)토록 하는 개방형 이사제 도입, 자문기구인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기구화(역시 법으로 강제해 의결 기구화나 마찬가지다), 학생회.교사회(교수회).학부모회.직원회의 법제화를 주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는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사학의 경영을 학교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집단운영 체제로 바꾸겠다는 의도라 할 수 있다. 민주화는 만병통치약인가? 기업경영에 있어서도 민주화라는 명목으로 피고용인의 경영참여를 법으로 강제하면 기업경영에 유리한가? 그렇지 않다. 사회주의의 집단농장이 필연적으로 몰락할 수밖에 없었던 것과 같은 이치다. 사학도 집단운영할 경우 발전은커녕 교육의 질적 저하를 면키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혹자는 이데올로기 공세쯤으로 폄훼하려 든다. 하지만 집단농장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주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주인이라는 것은 누구도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이는 책임운영의 주체가 없음을 의미하며 따라서 실패는 예정된 결과다. 사학 경영도 마찬가지다. 이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평준화 지역에서 신흥 명문고교, 즉 대학 진학에서 탁월한 성과를 올리는 학교를 찾아보면 거의 대부분 사립학교다. 무엇이 공립과 사립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가. 그것은 책임운영 주체가 있느냐, 없느냐다.

이 교수는 사학이 족벌 체제로 운영돼 왔다고 비판한다. 물론 그러한 사학도 일부 있다. 하지만 족벌 체제라 해도 집단운영 체제보다는 낫다. 오늘날 세계적인 우량 기업으로 우뚝 선 삼성전자를 보라. 일각에선 끊임없이 이른바 '황제 경영'을 비난하지만 삼성전자의 오늘을 일궈낸 것은 책임운영의 주체, 즉 '주인'의 결단과 그에 따른 장기적 대형 투자였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마치 절대진리인 양 주장하는 사람들은 삼성전자의 불가사의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교수는 "지난날의 사립학교법은 사립학교의 공공성은 최소화하는 대신 설립자나 법인의 자율성은 최대한 보장해주고 있는데 사학 재단들은 이를 철저히 악용해 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한국 사학은 엄밀한 의미에서 사학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특히 중.고교의 경우 완전히 국가에 징발된 것이나 다름없다. 대학의 경우도 학생 선발조차 대학이 자율적으로 하지 못하도록 국가의 통제 아래 있어 많은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최대한 자율성을 보장해주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왜곡이거나 오해다. 미국은 아예 사립학교법이 없다.

지금 우리 교육이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는 교육을 국가의 획일적 통제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조남현 사학법인연합회 정책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