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진주만' 열광… "강력한 미국" 외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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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로키산맥 기슭 해발 2천m 고원도시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위치한 미 공군사관학교에는 미국의 태평양전쟁 참전 기념물이 있다.

생도 강당인 아놀드홀 1층 복도에 있는 유리함도 그중의 하나다.

'Doolittle Tokyo Raiders(두리틀 도쿄 공습) ' 라고 적힌 유리함 속에는 은잔 80개와 1896년산 코냑 술 한병이 보관돼 있다.

두리틀은 최근 개봉한 영화 '펄 하버(진주만 기습) ' 에서 B-25 폭격기로 일본 도쿄를 공격한 작전팀 대장(당시 중령) 의 이름.

미국은 1941년 12월 7일 진주만이 기습당하자 꺾인 미군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극비리에 도쿄 공습을 실시, 일본군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미 공사 브라이언 홉스 소령은 "이 은잔에는 그 때 작전에 참가한 요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며 "두명의 생존자가 남았을 때 그들이 옛 동료들을 기리며 코냑을 마시기로 돼 있다" 고 밝혔다.

영화 '펄 하버' 는 지난달 말 미국에서 개봉과 동시에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으며 2차 세계대전 전승기념 분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미 언론도 이 영화를 연일 보도하는 등 관심을 쏟고 있다. 샌프란시스코대 패트릭 해처 교수는 " '펄 하버' 의 인기는 최근 보수화하고 있는 미 국민들의 정서를 반영한 것" 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런 미국의 보수적인 바람은 부시 정부의 '강력한 미국' 이라는 신안보정책과 맞물려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박빙의 승리로 대권을 잡은 부시 정부는 국민들의 신 보수 바람을 등에 업고 강경 대북(對北) 정책과 미사일방어(MD) 의 정당성 확대를 노리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버클리대와 샌프란시스코대에서 30년간 동북아문제를 연구한 해처 교수는 "미 국민들은 진주만 기습에 대해 치를 떨고 있다" 면서 "이런 미 국민들의 정서가 북한의 미사일.핵문제에도 적용되고 있다" 고 밝혔다.

그는 "특히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이 하와이나 알래스카를 겨냥하고, 북한이 핵폭탄용 플루토늄을 숨겨놓고 있다는 뉴스가 나오면 캔자스주 등 전형적 농촌의 사람들 조차도 격분한다" 고 미국의 분위기를 전했다. 미국의 보수화의 한 가운데 북한이 도사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부시 정부가 이런 보수화를 바탕으로 미국 내에서 초당적인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경우에 따라선 걸프전이나 유고전쟁 같은 위기상황을 한반도에서도 유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그의 관측이다.

정권을 빼앗긴 민주당 및 민주당 성향의 싱크탱크들이 행정부에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한반도 화해.협력정책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미국의 대북정책을 추진하라" 고 강력 요구했음에도, 강경 대북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은 미국의 보수화 때문이라는 게 그들의 분석이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이 17일 "미국은 러시아의 협조 여부에 관계 없이 MD계획을 추진해 나갈 것" 이라고 각각 밝힌 것도 이같은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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