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식은 부부관계와 주식의 공통점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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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강일구

인간은 새로운 상황에 대해 본능적으로 설렘과 경계심을 동시에 나타낸다. 그런 뒤 그 상황에 적응하려 노력한다. 이러한 노력기를 거치고 나면 마침내 안정감을 얻게 된다. 그런데 안정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초심을 잊고 안정된 상황을 권태롭고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다. 연인 또는 부부 사이가 그렇다. 서로의 행동과 생각에 익숙해져 상대방이 응당 이러저러하게 행동할 것이라고 단정지어 버리는 게 문제의 발단이 된다. 권태를 주제로 한 영화나 소설을 보자. 이들 작품에는 겉보기엔 문제 없이 생활하는 부부가 주인공이다. 그러나 둘 사이는 굉장히 위태롭다. 두 사람은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착각이다. 서로 애정 없이 그저 익숙함에 빠져 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예상치 못한 계기로 부부 관계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어느 한쪽이 바람 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애정이 식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파탄으로 치닫는다. ‘익숙함의 함정’이랄까. 주식 시장이 이와 흡사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서두가 좀 길어졌다.

안정성에 매몰된 투자 위험
주식 시장은 근래 지루한 박스권 양상이다. 코스피가 1900선을 중심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래위가 막힌 네모난 박스 안에 갇힌 모양이다. 미국의 경기부양책과 유럽 재정위기 해결책 등 정책 관련 기대감이 주식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으면서 박스권의 상·하단이 조금씩 올라간 모양새를 보이곤 하지만 뚜렷한 방향성이 없다.
이처럼 박스권이 길게 횡보하는 시기에는 단기매매 투자자가 늘어난다. 이들은 너무 빠졌다 싶은 우량주를 박스권 하단에 사서 주가가 상단에 가까워지면 팔아버리는 방법을 애용한다. 물론 단기 투자자들 역시 처음에는 조심스레 덤벼든다. 상·하단이 어디인지 확인하고 전체 투자금액 중 일부만 넣는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몇 번 재미를 보다 보면 ‘이렇게 손쉬운 투자법이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주식시장이 마치 괘종시계의 추처럼 동일 구간을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보인다. 착각의 시작이다. 자기도 모르게 박스권 매매에 ‘몰빵투자’를 하게 된다.

익숙함이 부부 관계의 함정이듯이 ‘익숙함에 기댄 투자’는 여러모로 위험하다. 우선 비용 측면에서 매매가 잦아지니 거래 비용이 늘어난다. 물론 단기간에 10% 정도의 수익률을 거둔다면 0.4%도 안 되는 거래비용은 조족지혈(鳥足之血)로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주식투자의 수익은 불확실한데 비해 거래비용은 수익이 나든 손실이 나든 매매할 때마다 들어가는 고정지출이다. 다음으로 수익이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애널리스트·펀드매니저 같은 주식 전문가들조차 박스권의 주가 단기 등락을 맞히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전에도 언급했듯이 주가 예측에는 너무 많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주가 예측 과정을 소개한다.

먼저 주가를 예측할 때는 향후 경기 흐름 전망을 해야 한다. 미국·중국·유럽의 경제 상황을 살피고 이들 지역의 미래 생산·재고·소비와 수출입 전망 등을 점검한다. 그리고 경기가 좋아진다면 얼마나 좋아질지, 나빠진다면 얼마나 나빠질지 조사한다. 이를 위해 과거 경기가 좋았을 때는 국내총생산(GDP)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나쁠 때는 얼마나 감소했는지 알아본다. 이와 함께 각종 원자재 가격을 기초로 해서 인플레이션이 어떠한 상황으로 전개될지도 감을 잡아야 한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단기 매매를 전문으로 하는 국제 투기세력들의 의중과 동향을 읽고, 시장 방향성의 키를 쥐고 있는 정치적 요소도 판단해야 한다. 연말 대선을 앞둔 미국에서 어떠한 정책적 합의가 나올 것인지 지켜봐야 한다. 또한 유럽연합(EU)과 유로존(유로화 통용 17개국)의 얽히고설킨 정치 게임과 중국의 성공적인 정권 이양 여부를 따라가 봐야 한다. 정작 우리나라의 연말 대선 결과가 핵심 포인트일지도 모른다. 애널리스트나 펀드매니저는 이런 잡다한 요소들을 종합 산출한 결과를 토대로 향후 주가의 흐름을 예측한다.

주가 단기 예측은 조물주의 영역
그렇다고 이렇게 공들인 예측이 맞는다는 보장이 있을까. 솔직히 펀드매니저가 직업인 필자도 한 달 후 혹은 반 년 후의 주가를 정확히 맞힐 자신과 능력이 없다. 잘해봐야 그 확률은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일 것이다. 그렇다면 주식투자 성공 확률을 60~70%로 끌어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철저한 기업 분석을 통해 몇 년 뒤를 보고 주가가 오를 가능성이 큰 주식을 캐내는 것이 정답이다. 성공 확률이 절반을 훌쩍 넘어서는 방법을 놔두고 굳이 확률 낮은 단기 매매를 애용할 이유는 없다. 물론 단기 고수익의 유혹을 뿌리치겠다는 결단이 필요하다. 투자자들은 스스로 이 두 가지 매매법의 성공 확률을 고민해 봐야 한다.

요컨대 주식시장 전체 흐름을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다. 따라서 단기적 시각으로 주식을 자주 사고파는 방법으로는 괜찮은 수익을 올리기 힘들다. 단기 매매보다는 진정으로 가치 있는 기업의 주식을 찾아내 장기간 보유하는 것이 훨씬 작은 위험으로 더 큰 수익을 올리는 방법이라 확신한다.

다시 권태를 다룬 영화·소설 얘기로 돌아가보자. 권태를 다룬 작품의 결말이 모두 파탄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과거 서로에게 가졌던 익숙함을 반성하고 앞으로 서로를 더 잘 이해하려 노력할 경우 해피 엔딩을 맞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주식시장에서도 투자자가 기업을 이해하고 면밀히 분석하는 데 힘쓰면 좋은 결과가 따를 것이다. 주식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익숙함’이 시장을 지배하는 양상이 강해지고 있다. 현명한 투자자라면 ‘익숙함’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만의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 초심으로 돌아가 역시 ‘기업가치가 뛰어난 회사’에 주목할 것을 권한다.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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