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위한 최고 선물, 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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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6호 31면

한국인들은 내게 종종 “어떻게 하면 내 아이가 영어를 잘 할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 우리 가족이 서울로 이사 온 건 내 딸 줄리아가 두 살이었을 때다. 줄리아는 한국 유치원을 다녔고, 우리 가족은 집에선 다들 한국어로 말한다. 약 3년간 줄리아가 영어를 접할 수 있는 두 가지 통로는 나와 ‘세서미 스트리트’ 같은 미국 아동 TV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줄리아는 미국으로 이사해서도 현지 학교에 곧바로 적응했고 동급생들과도 잘 어울렸다. 책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다.

아이들에게 선사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선물 중 하나가 책이다. 줄리아와 나는 함께 동화책을 읽곤 했다. 독서 여정은 내 꼬마 녀석이 생후 6개월 무렵부터 시작됐다. 매일 저녁 줄리아는 내 품에 안겨 책을 읽어주는 동안 잠을 청하곤 했다. 매일 밤 이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난 업무 관련 저녁 식사 시간마저 단축하곤 했다.

시작은 다채로운 팝업 동화책(펼치면 그림이 입체적으로 튀어나오는 책)으로 시작했다. 처음엔 난 글을 읽고 줄리아는 그림을 잡아당기곤 했다. 희생양이 된 그림도 몇 점이 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의 동물 모양 알파벳 책도 그중 하나였다. 놀랍게도, 내가 좋아하는 책은 살아남았다. '내가 크면(When I’m Big)'이라는 책은 ‘핍’이라는 이름의 애벌레가 자기가 크면 뭐가 될지를 알아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줄리아를 책에 집중시키기 위해 난 책의 캐릭터를 흉내 내기까지 했다.

내 부모님 역시 나와 내 딸만큼이나 책을 좋아했다는 건 우연이 아니다. 다행히 나의 모친은 내가 독서법을 깨칠 무렵 내가 좋아했던 책을 보관하셨다. 그 책의 제목은 호기심 많은 조지, 자전거를 타다. 나치의 탄압을 피해 피난 가던 남녀가 70여 년 전에 쓴 이 책의 주인공은 원숭이인데, 호기심이 너무 왕성하다 보니 여러 문제를 일으킨다. 줄리아는 이 책이 “아이들로 하여금 행동거지를 바르게 하도록 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줄리아와 나는 특히 운율이 맞는 제목을 가진 그림책을 유난히 좋아했다. 줄리아의 표현에 따르면 이 책들은 “글과 그림이 퍼즐 조각처럼 잘 들어맞는” 책들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작가는 닥터 수스. 하지만 닥터 수스의 책 중 좋아하는 책은 각자 다르다. 내가 좋아하는 캣 인 더 햇(Cat in the Hat: 모자 속 고양이)을 줄리아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그 책을 50번도 넘게 읽어주자 그 책을 숨기기까지 했으니까.

미국으로 돌아가선 우린 동네 공공도서관 단골손님이 됐고 수백 권의 그림책을 함께 읽었다. 공공도서관이야말로 아동 도서의 드넓은 세계를 항해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다. 줄리아가 점점 책 읽는 데 자신이 붙어가면서 우린 파팔리나와 마르셀(Farfallina and Marcel)(애벌레와 백조가 서로의 차이점을 극복하고 친구가 되는 과정을 그린 감동 스토리), 피카소와 포니테일로 머리를 묶은 소녀(Picasso and the Girl with the Ponytail)(화가 파블로 피카소가 수줍음 많은 학생을 만나면서 인생이 변하는 놀라운 실화) 등을 독파했다.

이런 성장과정을 거친 줄리아는 대단한 독서열을 가진 아이로 성장했고 도서관에서 항상 너무 많은 책을 가져오곤 했다. 이제 줄리아는 글 위주로 된 아동 도서를 읽지만 서로에게 여전히 책을 읽어주는 걸 좋아한다. 책을 소리 내 읽으면 아이의 뇌 발달에 좋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이런 배경이 내가 아시아재단의 ‘아시아를 위한 책(Books for Asia)’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다. 아이들의 손에 들린 책이 발휘할 수 있는 힘을 잘 알기 때문이다. 책은 상상력의 세계를 열어주고 새로운 가능성을 가져다준다. 이제 줄리아와 내가 함께 책을 읽는 시간은 줄어들겠지만 언젠가 줄리아도 자기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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