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로 불리던 선생님 하늘서 보내온 장학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사랑하는 민진에게. 겨울방학 잘 보내고 있겠지? 선생님도 민진이와 많이 공부하고 싶었지. 미안하구나. … 민진아! 건강하고, 멋지게 크는 민진이 모습을 상상하며. 보고 싶구나. 2012. 2.1 ’

 지난 2월 서울의 대학병원에서 피부암으로 투병 생활을 하던 충북 청원군 오창읍의 각리초등학교 손명선(57·사진) 교사가 자신이 맡았던 2학년 8반의 한 남학생에게 보낸 편지다. 지난해 8월 병가를 낸 손 교사는 서울과 가평의 요양원을 오가며 암과 싸웠다. 병마와 싸우면서도 두고 온 제자들이 눈에 아른거려 사진을 끌어안고 잠이 들었다.

제자들은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손 교사의 쾌유를 기원하며 편지를 보냈다. 편지를 받아 든 그는 하루에 한두 통씩 40여 명의 아이들에게 보내는 답장을 썼다. 오래 앉아 있기 힘들었지만 아이들이 보낸 편지를 복사해 보관한 뒤 원본 뒷면에 하트 모양의 편지를 붙여 보냈다.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는 그는 세상을 떠날 때 아이들의 편지를 곁에 놓아달라고 했다. 그는 지난달 4일 유명을 달리했다.

고 손명선 교사가 병상에서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 하트 모양의 편지지에 “사랑한다”고 적었다.

 투병 생활 중 손 교사는 남편에게 “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다”며 “남은 재산을 제자를 위해 써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고인의 남편인 전병환(58)씨는 27일 각리초교를 방문, 아내의 유언에 따라 장학금 1억원을 맡겼다. 지난 23일에는 고인의 모교인 충남 논산 강경황산초교에도 1억원을 장학금으로 기탁했다. 전씨는 “아내가 숨을 거두기 전까지 어려운 형편의 학생을 걱정했다”며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아내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고 말했다. 장학금은 아내의 명예퇴직금과 급여보험, 생활비를 아껴 틈틈이 예금해 둔 돈 등으로 마련했다. 해외의 에너지업체에서 근무하던 전씨는 아내의 병간호를 위해 2년 전 퇴직했다. 전씨는 “우리 부부에게 아이가 없는데 그래선지 아내가 아이들을 더 예뻐한 것 같다”며 “다시 일을 시작할 예정인데 돈을 벌면 장학금을 추가로 기탁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학교는 고인의 유지에 따라 지난 10일 손씨 부부의 이름을 따 ‘손명선·전병환 장학회’를 설립했다. 내년 9월부터 고인이 맡긴 장학금의 이자 수입으로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남편 전씨는 이번 장학금 이외에도 아내가 근무했던 학교 10여 곳을 모두 찾아가서 교육기구나 운동기자재 등을 기증할 계획이다.

 생전의 손씨는 동료 교사 사이에서 ‘천사’로 불렸다. 선하고 마음이 넓어 학생들은 물론 교사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이정자 교감은 “(고인이) 대학교 선배인데 생활이 어려운 학생을 찾아가 쌀과 옷을 건네는 등 제자 사랑이 남달랐다”며 “아이 한 명 한 명을 예뻐하고 진심으로 사랑했던 모습은 모든 교사가 본받아야 할 모습”이라고 말했다. 한 동료 교사는 “손 교사는 도회지 근무를 마다하고 시골 학교 근무를 자원하며 아이들과 교감을 나누는 데서 보람을 찾았던 참교사”라고 말했다.

  정부는 30일 고인에게 옥조근조훈장을 수여할 예정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