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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과 공포 사이의 겸허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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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상복
워싱턴 특파원

며칠 전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는 영상을 봤다. 1995년 미국 몬태나주 헬레나에 있는 한 초등학교가 무대였다. 선생님이 5학년생 8명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희들, 인터넷의 미래가 어떨 것 같니?”

 아이들은 이제 막 퍼져나가기 시작한 인터넷에 대해 갖가지 생각을 쏟아냈다.

 “전화기처럼 없어선 안 될 존재가 될 거예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과도 채팅을 할 수 있어요.” “내 고양이 사진을 전 세계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돼요”….

 20년이 채 못 돼 아이들의 상상은 정확한 현실이 됐다.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들은 순수한 마음이 미래를 예측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기자의 생각은 다르다. 아이들이 미래를 봤다기보다는 우린 당대에 상상하고 꿈꿔온 것들을 하나씩 이뤄내 온 것이다.

 요즘 개인적으로 호기심을 가진 또 하나의 소재가 있다. 최근 화성에 안착한 미국 탐사로봇 ‘큐리오시티’가 보내오는 사진들이다. 화성의 모습은 놀랍게도 지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늘색은 몰라도 잔돌이 깔려 있는 바닥이나 언덕의 모습은 거의 흡사했다. 하늘만 손질하면 지구 어느 쯤이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지구 침공을 꿈꾸는 외계인들이 살고 있다고 믿었던 화성은 이렇게 평범한 모습으로 베일을 벗고 있다. 그 평범함이 지구와 화성의 거리를 크게 좁혀놓을 거라는 상상을 해 본다. 전문가들은 15~20년 후면 일반인들의 화성 여행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인류는 상상에서나 존재했던 일들을 하나씩 현실화해 왔다. 20세기에 나온 공상과학 소설을 허황되다고 말할 사람은 더 이상 많지 않을 것이다. 그 점에서 지금 우리가 꾸는 꿈도 가까운 미래에 이뤄질 것으로 믿는다. 20년 전 몬태나주 아이들이 미래를 정확히 그렸던 것처럼 화성 여행도 현실이 될 것이다. 상상한 대로 이룰 수 있다는 건 희망이고 축복이다.

 하지만 이런 낭만에 찬물을 끼얹는 뉴스도 이어지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바이러스의 습격이다. 최근 미국에선 일본뇌염 바이러스와 비슷한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올 들어 미국에서만 26명이 숨지고 7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감염됐다. 사스·신종플루·조류독감 등 전 세계를 패닉 상태에 빠뜨렸던 바이러스의 공포는 중단될 줄 모른다. 아프리카에선 치료제도 없는 에볼라 바이러스가 다시 퍼져 지난달에만 수십 명이 죽었다고 한다.

 1958년 노벨생리학상 수상자인 조슈아 레더버그는 “인류의 지구 지배에서 단 하나 위협은 바이러스”라고 했다. 화성에 가고 무한한 꿈을 꾸는 인류지만 눈에 안 보이는 미세한 존재인 바이러스를 정복하지 못하고 있다. 수천 년 싸워왔어도 이길 승산이 안 보인다. 결국 희망과 공포 사이에서 겸허함을 가져야 하는 게 인간의 숙명인 듯하다. 그게 지구가 우리에게 주려는 교훈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