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시대…의약품 특허 전쟁 본격화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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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시행으로 허가-특허 연계제도 시행으로 의약품 특허 전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내 의약품 특허목록집인 그린리스트에는 현재까지 51개 품목(8월 3일자 기준)이 등재됐다. 품목허가권자를 기준으로 다국적제약사는 17개 품목을, 국내 제약사는 34개 품목에 대해 검토를 완료한 상태다.

앞서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이미 시판허가한 의약품에 대한 특허목록집 등재 신청을 진행 총 960여 품목의 의약품에 대해 접수를 받았다. 이들 제약사는 의약품의 물질·용도·제형·조성물 특허 등 의약품 분야 4가지 주요 특허 목록집 등재를 신청했다.

식약청 관계자는 "지난 6월까지 이미 허가받은 의약품을 대상으로 한 특허목록집 등록 신청을 마감했다"며 "지금은 의약품 특허 검토 접수를 받은 품목을 대상으로 허가사항과 관련 특허정보를 확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특허 등재 신청이 폭주한 이유는 지난 3월 15일 자로 한·미 FTA가 발효돼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제도가 시행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 제도는 의약품 특허권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특허기간이 존속하는 동안 허가와 특허를 연계해 제네릭(복제약)의 시판을 금지시킨다.

만일 특허기간 동안 복제약 시판 허가를 신청하려면, 사전에 해당 약물의 특허권자에게 그 사실을 통보해야 하고 특허권자는 특허침해 여부를 판단해 복제약 시판을 막을 수 있다. 이 때 특허목록 데이터베이스인 ‘그린리스트’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앞서 식약청은 이미 허가받은 의약품에 대해 한미FTA가 발효된 날을 기점으로 특허등록기간인 6월 15일까지 특허등록신청을 받았다. 그 이후는 신약만 접수할 수 있다. 식약청 관계자는 "기허가 품목에 대한 등록신청을 끝났지만 새롭게 허가를 받는 품목의 경우 30일 이내에 관련 특허를 신청해야 해 앞으로 특허목록집에 등재되는 의약품 목록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처음 등재된 의약품 특허는 안국약품의 '애니코프캡슐'다. 이어 종근당, 한국BMS제약, 휴온스, 동화약품, 셀트리온, 한국피엠지제약, 한국페링제약, 한독약품 등이 특허목록집에 자신의 제품을 등재했다.

"특허권 소송 77%는 제네릭 개발사 승소…특허권 극복 인센티브는 없어"

의약품 특허권 남용으로 인한 피해도 가시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제도 도입이 논의될 당시 제약업계는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제도가 도입되면 연간 1500억 원 가량 매출이 줄어들 것이라며 대응책 마련으로 요구했었다. 국내 제약사 관계자는 "제네릭 개발사가 제네릭을 특허 만료일 다음날부터 출시할 수 있는 것은 그 전에 관련 허가를 이미 다 받아놨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며 "허가-특허 연계제도가 도입되면 그 기간동안 허가심사를 진행할 수 없어 다국적제약사는 그 기간만큼 의약품 특허를 늘리는 효과를 본다"고 지적했다.

실제 의약품 허가-특허 제도가 시행되면 정부는 제네릭 개발사가 의약품 허가신청을 할 때 특허권자에게 제네릭(복제약) 개발 사실을 통보해 준다. 이후 특허권자가 의약품 특허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 허가당국인 정부는 특허소송이 마무리될 때까지 제네릭 제조·시판을 금지한다. 예전에는 의약품 허가와 특허를 별도로 운영해 제품을 개발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는 의미다.

의약품 특허권이 강화되면서 특허가 정상적으로 만료됐는데도 특허 침해소송을 제기하는 등 특허권자가 이를 남용해 불공정행위가 빈번해질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제약업계 특성상 의약품 특허기간은 회사0 매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하루라도 특허기간을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회사는 이익이다.

실제 지난 6월 국회 입법조사처에서 발표한 '한·미FTA 체결에 따른 주요 정책 및 입법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제도 도입으로 오리지널 특허권자는 어떤 회사가 제네릭 제품 개발여부 등을 알 수 있게 된다. 결국 이들 특허권자는 자신들이 갖고 있는 특허전략을 강화해 제네릭 개발사의 경쟁력을 줄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입법조사처는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 시행으로 특허분쟁이 발생했을 때 최종허가까지 시판이 자동유예되는 기간을 얼마로 할 것이냐는 것이 관건"이라며 "자동유예기간이 오리지널 의약품 제조사에 대한 보호수단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국내 의약품 소송에서 특허심판이 8개월, 특허침해 금지소송이 12~28개월 정도 소요되는 것을 감안, 특허가 유효나 무효냐에 상관없이 특허소송을 제기하는 것만으로도 2년 간 독점권을 누릴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특허를 극복할 경우 미국처럼 제네릭 의약품 신청권자에게도 일정기간 동안 시장독점권을 부여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08년까지 진행된 총 48건의 의약품 특허분쟁 소송에서 77% 이상(37건)은 제네릭 개발사가 오리지널 특허의 무효를 입증해 승소했다. 그만큼 오리지널 의약품 제조사가 특허정보 등재를 통해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는 것.

국내 제약사 관계자는 "특허심판에서 지금도 특허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의약품 특허의 허가-연계 제도가 시행되면 제네릭 의약품 시판이 지연돼도 이에 대한 손해는 배상을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공정위 "특허권 남용은 새로운 불공정 행위"

논란이 커지자 정부에서도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먼저 나선 것은 공정거래위원회다. 특허권 남용이 새로운 유형의 불공정행위를 초래한다는 우려때문에서다.

예를 들어 신약 특허권자가 제네릭개발사가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복제약을 개발한다'는 통보만 있어도 특허소송을 제기한다거나 진보성 없는 특허를 다수 출원해 신약 독점판매 기간을 연장하려는 전략을 펼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 또 특허권자가 제네릭 업체에 일정한 경제적 이익을 제공, 제네릭 의약품 출시를 늦추는 역지불 합의(reverse payment)도 증가할 수 있다. 신약 특허권자는 해당 의약품 시장의 독점해 의약품 시장 경쟁을 저해한다는 지적이다.

우선 공정위는 제약·기계·화학 분야 등 업종별로 다국적기업과 국내기업 간 체결된 지식재산권 라이선스 계약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또 제약부문에서는 신약 특허권자의특허권 남용과 제네릭 개발사간 경쟁 제한 합의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개선을 추진해 나간다.

공정위 관계자는 "오는 11월 신약 특허권자와 복제약 개발사간 표준계약서를 마련·배포해 업계 자율적인 공정거래 관행 정착을 유도하겠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보건복지부와 협의해 약사법령에 신약-복제약 제약사간 계약을 공정위에 신고해 감시체계를 구축하는 방안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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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미 기자 byjun3005@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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