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비전] 선진 관전문화 몸에 익히자

중앙일보

입력

1999년 히바우두 · 카를로스 등이 포함된 세계 최강 브라질 축구대표팀이 한국을 방문했다.

당시 경기가 벌어진 잠실운동장은 세계 최고 수준의 경기를 보기 위해 온 축구팬들로 가득 찼다.

그러나 불행히도 운동장은 아비규환이라는 표현이 적당할 정도로 무질서했다. 지정석에는 미리 입장한 관중이 남의 자리를 선점해 곳곳에서 시비가 벌어졌다.

일부 관중은 기자석까지 차지하는 몰염치를 보였다. 또 화장실은 여름날 소낙비에 홍수가 나듯 흥건히 물이 고여 발을 내디디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외신기자들은 이런 저급한 축구문화를 지닌 나라가 과연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을지 의구심을 품었다.

지난 18일 울산 문수경기장을 다녀왔다. 오는 28일 국내 10개 월드컵 경기장 중 가장 먼저 개장하는 문수경기장은 한마디로 '원더풀' 이었다.

지하 2층 · 지상 3층으로 건설된 경기장은 관중 수용 규모가 4만3천5백12석에 이르는 축구 전용구장이다.

주경기장과 2천5백90석의 좌석이 있는 축구 보조경기장 · 전망광장 · 자연호수 · 호수 주변 산책로 · 분수대(60m의 고사분수 1기 · 30m의 분수 3기 등), 야외공연장 · 기타 부대시설 등으로 구성돼 있다.

86년 멕시코 · 90년 이탈리아 · 94년 미국 · 98년 프랑스에 이르기까지 네차례의 월드컵을 현장에서 볼 기회가 있었지만 문수경기장만큼 아름답고, 주변 환경과 시설이 쾌적한 경기장은 보지 못했다.

경기장의 87%를 지붕으로 덮어 우천시에도 쾌적하게 관람할 수 있고 비상시 3분50초 만에 전원이 경기장을 빠져나갈 수 있도록 간결한 동선체계로 설계된 점도 놀라웠다. 2백92명의 장애인도 관람할 수 있도록 좌석을 마련한 점도 돋보였다.

축구경기장의 생명인 잔디는 직접 씨를 뿌려 키워 양탄자와 같은 최적의 그라운드 컨디션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 경기장은 개장 기념으로 브라질의 명문 보타포고를 초청해 울산 현대와 경기를 갖는 것을 시작으로 5월 컨페더레이션스컵의 주요 경기(6월 1일 한국-멕시코, 6월 3일 프랑스-멕시코)와 내년 2002월드컵에는 예선전 두 경기, 8강전 한 경기를 소화하게 된다.

울산시민들은 세계적인 경기장에서 화려한 축구쇼를 관람하는 즐거움을 누리게 됐다. 선수들이 뛰면서 내뿜는 가쁜 숨소리와 거친 몸싸움 때 들리는 충돌음, 현란한 발동작에 춤추는 멋진 축구공을 가까이에서 만끽하며 축구는 왜 전용구장에서 해야 하는지를 느끼게 될 것이다.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한 조건 중 가장 큰 부분인 경기장 시설이 속속 완료되는 시점에서 한가지 중요한 과제가 있다. 바로 성숙한 축구 관전문화다.

60년대 '마술의 드리블러' 가린샤와 자갈로, 94 미국 월드컵 멤버 베베토가 활약한 보타포고와의 경기에서 우리는 훌륭한 시설에 걸맞은 팬들의 의무를 익혀야 한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한국을 대표하는 국가대표다. 그 첫 걸음을 28일 울산에서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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