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사공만도 못한' 조정 선수, 런던 인기남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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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제르의 조정 대표인 이사카(35)는 지난달 30일(한국시간) 열린 남자 2000m 조정경기에서 꼴찌로 들어왔다. 그래도 1위보다 더 큰 박수를 받았다. 경기를 마친 이사카가 환하게 웃고 있다. [AP=연합뉴스]

아프리카 대륙 중서부에 자리한 니제르 공화국. 알제리·나이지리아 등에 둘러싸인 내륙지방이어서 물 구경하기가 힘들다. 물부족 국가인 니제르의 하마두 지보 이사카(35)는 런던 올림픽 조정 국가대표다.

 이사카는 지난달 31일(한국시간) 이튼 도니 조정 경기장에서 열린 싱글 스컬 경기에서 9분7초99를 기록했다. 함께 경기한 세 선수보다 1분 이상 늦게 결승선을 통과했다.

 게다가 그는 점점 느려지고 있다. 예선 첫 레이스에서 8분25초56을 기록하더니 패자부활전에선 8분39초66에 피니시 라인을 겨우 통과했다. 이틀 후 힘이 더 빠졌는지 기록이 9분대로 떨어졌다. 뱃사공만도 못한 수준이다. 하지만 꼴찌로 들어온 이사카는 1위보다 더 큰 박수를 받았다. 29일 경기에선 경기장 아나운서가 서툰 솜씨로 힘겹게 노를 젓는 그에게 “힘내라. 당신은 할 수 있다”고 ‘편파중계’를 하기도 했다. 실력은 최악이지만 인기는 최고다. 세계 각국 언론은 이사카와 인터뷰 하기를 원했다. 지난달 31일 그는 올림픽파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이사카는 “내가 노를 저을 때 관중이 환호해 줘서 정말 행복했다. 나를 보고 니제르에서도 조정을 배우려는 사람이 많이 생겼다”며 뿌듯해했다.

 불과 3개월 전에 조정을 시작한 그가 올림픽 스타가 될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니제르 수영연맹은 이사카를 이집트로 보내 2주 동안 조정을 배우게 했고, TV에서만 조정을 봤던 그는 처음 노를 만져 봤다. 기량은 형편없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와일드카드로 이사카를 올림픽에 참가하도록 했다.

 니제르에서는 이사카가 조정 선수로 그나마 적합한 편이었다. 일단 물에 빠져 죽을 위험이 없었다. 그가 수영선수 출신이기 때문이다. 이사카는 “난 50m 자유형 선수였다. 내 최고 기록은 27초”라고 자랑했다. 세계 수준과는 6초 이상 차이 나지만 아프리카에서는 꽤 괜찮은 기록이다.

 그는 “배를 처음 탔을 때 물에 빠졌다. 그러나 난 수영을 잘하기 때문에 걱정 없었다”며 해맑게 웃었다. 니제르는 올림픽 참가 전까지 완주를 6~7번밖에 하지 못했다. 이집트에서 훈련할 때를 제외하면 마땅한 연습 장소도 지도자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난 사실 기술이 없다. 대신 힘이 세기 때문에 앞으로 기량이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사카는 경쟁에서 한참 멀어져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의 도전 정신은 에릭 무삼바니(적도기니)를 연상케 한다. 무삼바니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수영 남자 자유형 100m에서 헐렁한 사각팬티를 입고 일반인과 비슷한 속도로 ‘게헤엄’을 치며 완주, ‘꼴찌 영웅’으로 불렸다. 이사카는 ‘런던의 무삼바니’로 불리고 있다.

 1984년 LA부터 2000년 시드니까지 올림픽 조정에서 5회 연속 우승한 스티브 레드그레이브(영국)는 “조정을 하지 않는 나라에서도 좋은 선수가 나올 수 있다”며 이사카를 격려했다.

런던=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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