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궁 코리아 2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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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고 석봉근 선생(左), 석동은 감독(右)

‘한국 양궁 개척자’의 아들이 이탈리아에 올림픽 금메달을 안겼다. 석동은(57) 감독이 이끄는 이탈리아가 29일(한국시간) 열린 런던 올림픽 남자 양궁 단체전 결승전에서 미국을 꺾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올림픽에서 양궁이 시작된 1972년 이후 이탈리아의 금메달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남자 개인전 마르코 갈리아조에 이어 두 번째다. 모두 석 감독이 지도자로 금빛 영광을 선사했다. 석 감독은 한국 양궁의 개척자인 고(故) 석봉근(1923~96) 선생의 장남이다. 아버지가 한국에 양궁을 도입했다면 아들은 유럽의 이탈리아를 양궁 강국으로 이끌었다. <본지 7월 23일자 2면>

 석 감독은 국내 남자 양궁 1세대 선수다. 스승은 아버지 석봉근 선생이었다. 체육교사였던 석 선생은 1960년대부터 손수 양궁 활과 교본을 제작해 제자들을 가르쳤다. 양궁에 삶을 바친 아버지를 따라 석 감독도 어려서부터 활을 익혔다.

 한국의 1세대 선수 중 에이스가 석 감독이었다. 1973년 전국종합선수권대회에선 한국신기록 5개를 세웠다. 1972년 뮌헨 올림픽과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을 앞두고는 국가대표로 뽑혀 태릉선수촌에 입촌하기도 했다. 하지만 선수로는 올림픽과 인연이 없었다. 1964년 도쿄 올림픽 참패 뒤 정부와 대한체육회는 ‘소수 정예’로 올림픽 선수단을 꾸린다는 방침을 정했다. 1970년대까지 세계 수준과 거리가 있었던 양궁은 두 대회 연속 올림픽 출전에서 배제됐다.

 선수로서 못 이룬 올림피언의 꿈을 지도자로 이룬 무대가 이탈리아다. 석 감독은 국내에서 지도자 생활을 마치고 1991년 사업을 위해 이탈리아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무역업을 하면서 주말에는 현지 클럽팀에서 활을 쏘았다. 이탈리아에서 양궁은 생활체육이다. 선수는 많지만 전문적인 지도는 부족했다. 석 감독의 조언을 받은 클럽 선수들이 국내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자 이탈리아 양궁협회는 2001년 그에게 국가대표 감독을 맡겼다. 그 첫 열매가 2004년 갈리아조의 금메달이었다.

 석봉근 선생의 제자인 조춘봉 전 동서증권 감독은 “석 감독은 한국식 정신 훈련과 이미지 트레이닝을 훈련에 적극 도입해 좋은 성과를 냈다”며 “한국 양궁 초기 지도자와 선수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양궁을 연구했다는 게 입증되는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최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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