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최양락 '알까기'는 왜 재미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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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는 사람들 중에는 두 유형이 있다. 자연스럽게 웃음이 터져 나오게 만드는 사람과 기가 차서 허탈감을 느끼게 해 주는 사람.

후자의 웃음은 물론 억지스럽고 민망한 경우다. 짜증나게 만들어 주므로 머무는 정서가 희열보다 분노에 가깝다.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생산하는 웃음도 마찬가지다. 자연스럽게 웃도록 만들면 마음이 정화작용을 일으키지만 '이래도 안 웃을래' 하면서 시청자를 당혹하게 만드는 코미디는 고문이나 폭압에 가깝다.

정통 코미디 프로그램이 사양길에 접어든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드라마와 공생을 시도한 시트콤이 오히려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일요일 한낮에 편안하게 웃겨 주는 프로그램이 하나 생겼다. 디지털시대의 코미디답게 제목이 '코미디 닷컴' (MBC) 이다.

그 중에 아주 차분하고 진지한(?) 꼭지 하나가 눈길을 끈다. 개그맨 최양락이 주도하는 '뉴 닷컴배 알까기 명인전' 이 그것이다.

스스로 아이디어를 냈다고 하는데 구성은 아주 간단하다. 바둑대회를 패러디한 형식인데 게임은 그저 바둑알을 손으로 튕겨 상대방의 알을 판 밖으로 밀어내면 이기는 내용이다. 유명한 바둑해설가의 독특한 발성을 흉내내면서 대국하는 자의 살아온 이력을 비튼다.

연출의 핵심은 최대한 엄숙한 출연자의 표정이다. 아무리 웃겨도 웃지 않는 게 중요하다. 물론 도저히 웃음을 참지 못해서 출연자의 인내가 한계에 도달하는 모습도 자주 눈에 띈다(점잖은 이미지의 대국자일수록 웃음의 강도가 크다) .

코미디의 진정한 목표는 비틀거리는 세상을 조롱하는 것이다. 알까기는 판 밖으로 상대를 몰아내야만 승자가 되는 비인간적 구도를 야유한다.

자기가 벌이는 사건이 얼마나 우스꽝스런 일인지 알지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고) 바둑알 까기에만 몰두하는 '진지한 바보들' 을 해설자 최양락은 마음껏 주무른다.

이전에 무지한 독재자를 신랄하게 풍자했던 '네로 25시' 나 겉다르고 속다른 현대인의 이중성을 겨냥한 '도시의 사냥꾼' 으로 사람들을 웃기고 반성케 한 전력이 녹슬지 않았다.

교훈은 무언가.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연예인에게 면박을 주고 고통을 주어서 억지웃음을 만들고자 하는 코미디 제작진에게 '알까기' 의 성공사례는 참고서가 될 만하다. 그의 나이가 이제 마흔이라는데 정말로 흔들리지 않고(불혹) 세상살이의 이치를 웃음을 통해 깨닫도록 도와 주는 코미디언으로 오래도록 남아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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