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고채보다 비싼 CD금리 11개월간 이상한 역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4면

3개월짜리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가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보다 높은 상태가 열 달째 지속되고 있다. 장·단기 금리 역전은 가끔 일어나지만 이렇게 오래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CD가 시장 금리로서의 기능을 잃었다는 또 다른 방증이다. CD 금리 담합 의혹이 일었던 근본 이유이기도 하다.

 22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8월 9일부터 올 3월 14일까지 CD 금리가 국고채 3년 금리보다 높았다. 이후 국고채 금리가 올라 22일간 CD 금리보다 높았지만 올 4월 6일 다시 역전돼 현재(20일)까지 이런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채권 금리는 바꿔 보면 ‘돈의 값’이다. 금리가 높다는 건 채권값이 싸다는 얘기다. 그래서 만기가 길면 일반적으로 금리도 높다. 다만 투자자들이 안전 자산으로 쏠릴 때는 장기채 금리가 가파르게 떨어져(가격 상승) 장·단기 금리 역전이 잠깐 나타나기도 한다.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2008년이 대표적이다. 한국은행이 기습적으로 기준금리를 내리기 전인 지난 6일에도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국고채 3년 금리가 3.23%까지 하락, 3년9개월 만에 기준 금리(당시 3.25%)보다 높아졌다.

 하지만 CD와 국고채 간의 금리 역전은 이런 맥락에서 해석하기 어렵다. 경기 흐름에 따라 발생한 금리 역전은 몇 달이면 제자리로 돌아온다. 2008년 9월의 금리 역전은 99일 만에 정상화됐다.

 증권가에선 이렇게 오랜 기간 장기 금리보다 CD 금리가 높게 움직인 이유로 CD의 발행과 거래가 거의 없었다는 점을 꼽는다. 시장 상황을 그만큼 반영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지난해 8월 이후 11개월간 CD 금리는 0.37%포인트 움직였을 뿐이다. 올해 4월 9일부터 7월 11일까지는 아예 3.54%에서 꿈쩍하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 전후로 하루 0.01%포인트씩 다섯 번 내려갔다. 오창섭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위원은 “금리 역전의 가장 큰 요인은 CD 금리가 시세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국고채보다 뒤늦게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08년 월평균 약 19조원에 달했던 CD 거래는 최근 월평균 2조여원에 그치고 있다. 상반기 거래금액은 13조원, 발행액(한국예탁결제원 등록발행 기준)은 5조8000억원이었다. 같은 기간 국고채 발행액은 41조원, 하루 평균 거래액은 약 8조원이다. 비교가 안 될 정도다.

 그런데도 이렇게 작은 규모의 CD에 금융시장 전체가 얽혀 있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다. 금융감독당국에 따르면 3월 말 기준 국내 은행의 원화대출 1080조원 중 30%(324조원)가 CD 금리에 연동한다. 증권사가 발행하는 CD 금리 기초자산 파생결합증권(DLS) 잔액은 6조8000억원(19일 기준)이다. 보험권의 CD 연동 가계대출은 15조7000억원(3월 말 기준)으로 추산된다. 카드사는 자금을 조달할 때 ‘CD 금리+가산 금리’로 발행하는 채권이 일부 있다. 결국 모든 금융소비자에게 CD 금리가 직간접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얘기다. 전효찬 삼성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CD 금리가 조금만 변해도 고객이 영향을 받게 돼 있는 구조”라며 “중요성에 비해선 대표성이 크게 떨어지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게 더 문제”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