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공단 가보니] 체감 경기는 바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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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오후 5시 인천시 고잔동 남동공단 2단지에 있는 ㈜서한메라민.

전자회로기판(PCB)과 건축물 마감재를 만드는 이 회사의 전 직원 40여명은 토요일 오후 늦은 시간까지 작업하고 있었다.

이 회사 이균길 사장은 "3월 초만 해도 일감이 없어 고전했는데 최근 환율이 올라가면서 중국 쪽에서 주문이 몰려 토요일은 물론 일요일도 잔업을 하고 있다" 고 말했다. 이 회사는 수출 호조에 힘입어 올 매출 목표를 지난해의 두배 가량인 1백20억원으로 잡아놓고 있다.

같은 날 오전 남동공단 1단지에 있는 화학섬유업체 S사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주로 동남아 쪽에 수출해 온 이 업체는 지난 1월 50만달러의 수출액을 기록했지만 지난달에는 30만달러선으로 뚝 떨어졌다.

이 회사의 崔모 관리이사는 "지난달 초 현지 수입업체에서 '경기가 좋지 않아 물량을 축소한다' 는 일방적인 통고를 받았다" 고 말했다.

◇ 엇갈리는 명암=원화 가치가 떨어지면서(환율 상승) 중소 수출업체들의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대체로 전자부품 업체들은 가격 경쟁력을 회복하며 활력을 찾고 있으나 섬유.음식료.기계업 등은 여전히 찬바람이다.

내수 업체들은 환율 상승에 따른 원자재가 상승과 내수 부진 등으로 이중의 고통을 받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내수보다 수출에 치중하는 업체들이 늘고 있다.

남동공단에서 소형 가전제품을 만드는 IC테크의 최근영 사장은 해외 바이어 개척을 위해 지난달 내내 독일.일본.미국 출장을 다녔다.

崔사장은 "내수와 수출이 반반이던 매출 비중을 올해는 '내수 20 대 수출 80' 으로 바꾸었다" 고 말했다.

그러나 원화 가치 하락이 중소기업에 도움만 되지는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정렬 인천본부장은 "환율이 계속 오르면 해외 바이어들이 가격을 깎아 달라고 요구하게 마련인데, 이를 들어주다 보면 실속을 차릴 수 없다" 고 말했다.

◇ 체감 경기는 여전히 바닥=전국 공단의 가동률이 최근 상승세로 돌아섰다지만 특정 업종을 제외하면 전반적인 중소기업 체감 경기는 여전히 가라앉아 있다.

울산.창원 등 대규모 장치 산업이 몰려 있는 공단은 서서히 활기를 찾고 있지만 경공업 위주의 중소기업이 주축인 구미.반월.시화단지 가동률은 오히려 떨어졌다.

섬유.전자.자동차부품 업체 등 1천3백여업체가 모여 있는 대구 성서공단 관계자는 "현재 1분기 가동률을 조사하고 있지만 삼성상용차 퇴출.섬유산업 퇴조.대우차 문제 등 때문에 4분기 가동률(72.8%.휴폐업업체 포함 조사)보다 더 떨어질 것 같다" 고 걱정했다.

설비투자도 아직 엄두를 못내고 있다. 대구 성서공단 내 D화학의 劉모 사장은 주문이 조금 늘어나자 제2공장 터를 물색했으나 "아직 좀 더 두고보자" 는 이사진의 만류에 결정을 유보했다.

중소기업연구원 유재원 동향분석실장은 "불투명한 경기전망 때문에 중소기업들이 과감한 설비투자를 주저하고 있다" 고 말했다.

이현상 기자 leeh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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