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나라를 볼모로 잡은 현대건설

중앙일보

입력

국민경제가 현대건설에 한없이 끌려들어가고 있다. 어제 채권금융단은 출자전환 등을 통해 현대건설에 2조9천억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올 들어 분양대금 담보 대출 3천4백억원과 해외공사 지급보증 4억달러, 회사채 신속인수 방안에 의한 3천억원 등을 추가 지원했지만 위기는 가시지 않고 있다.

추가 지원이 없었던 지난해에도 정부는 현대건설의 도산에 따른 충격을 우려했는데 4조원이 추가로 물린 지금 정부는 끌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이번 지원 역시 기업회생의 순서와 원칙, 형평성에서 크게 잘못된 것이지만 그렇더라도 현대건설이 이번의 지원으로 회생한다면야 정말 다행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히려 이로써 국민경제가 현대건설의 볼모로 잡힌 것 같아 매우 걱정이다.

정부는 지난해 현대건설의 영업.영업외 이익이 2천억원 가량 났기 때문에 차입금이 2조원대면 금융비용은 부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출자전환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계산으로 출자전환했던 대우자동차의 현재 모습을 돌이켜보면 이런 추정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지를 알 수 있다.

특히 건설업은 제조업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영업이익이 기대치에 크게 못 미칠 경우 추가적인 출자전환과 원리금 탕감은 필연적인 절차다.

보름 전에 시작된 실사에서 추가 부실이 나올 수도 있다. 이제까지의 '현대 살리기' 처럼 정확한 부실 데이터와 엄밀한 회생전략 없이 출자전환이 결정됐기 때문에 이번이 마지막 지원으로 끝나지 않을 공산은 매우 크다고 본다.

국민경제를 현대의 볼모로 잡을 생각이 아니라면 정부는 지금이라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3조원의 출자전환을 통해 현대건설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해선 안된다.

최악의 가능성을 대비해야 하고, 그 시작은 출자전환이 회생의 수단이지 목적이나 해결책은 아니라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겸해서 건설업의 명의(名醫)를 최고경영자로 선임해 새 리더십 아래서 사업구조 재편과 경영전략 수립을 서둘러 내외에 신뢰감을 주는 게 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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