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밀린 FTA … 노다 총리, TPP로 단숨에 역전 전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55) 일본 총리가 원전 재가동, 소비세 인상에 이어 세 번째 승부수를 던졌다.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 참가 선언이다. 참가 교섭만 하던 데서 참가해 본격 협상하겠다는 뜻이다. 농업 보호 등을 내세워 신중론을 펴온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70) 전 민주당 대표가 탈당, ‘국민생활이 제일’ 당을 창당함에 따라 이제는 정면 승부를 해볼 만하다는 것이 노다 총리의 계산이다.

 통상 자유무역협정(FTA)이 양자 간 협정이라면 TPP는 환태평양 국가들이 집단적으로 체결하는 FTA다. 한국이 FTA를 차근차근 체결해 교역의 우위를 확보했다면, 재무상 출신인 노다 총리는 TPP를 통해 열세를 일거에 만회하겠다는 입장이다. 교역 현장에서 경쟁력 약화를 절감하고 연일 TPP 체결을 압박하는 일본 재계로부터 지지를 얻는 길이기도 하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일본이 참가하는 TPP가 성사된다면 한국은 FTA로 다져온 경쟁력 우위를 조금씩 잃게 된다. 한·일, 한·중·일 FTA 체결 협상에도 파장이 예상된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다음 달 중 TPP 협상 참가를 정식 결정하고 미국 등 관계국들에 통보한다는 추진 일정을 내부적으로 확정했다. 소비세 증세를 골자로 한 사회보장 세금 일체 개혁 관련 법안이 의회를 통과할 것으로 예상되는 다음 달 상순 이후 공식 선언이 이뤄질 전망이다. 노다 총리는 이미 이런 입장을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등 관계국 정상에게 구두로 전달했다.

 일본 정부는 애초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9월 초에 열리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맞춰 TPP 참가 선언을 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하지만 APEC 정상회의에 오바마 대통령이 불참한다고 밝히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지난달 멕시코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캐나다와 멕시코가 교섭 참가 의사를 표명한 것도 일본 정부가 조기 참가 선언으로 가닥을 잡은 이유다. 멕시코와 캐나다는 지난해 11월 일본과 함께 교섭 참가를 위한 사전협의 참가를 표명한 ‘동기생’이다. 일본으로선 어정쩡하게 있다가 멕시코와 캐나다에 한 방 얻어맞은 셈이다.

 미국은 일본의 참가를 환영한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지난 8일 겐바 고이치로(玄葉光一) 외무상과의 회담에서 “일본의 TPP 참가는 매우 중요하다”며 일본의 조기 참가를 촉구했다.

미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측도 일본의 TPP 교섭 참가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미국으로서는 경제적으로 챙길 실리가 많다. 또 일본 시장 문 열기를 TPP라는 집단 FTA 마당에서 손쉽게 관철할 수 있다고 본다.

미국은 자동차·보험 시장의 개방을 일본에 압박하고 있다. 미 상공회의소 측도 일본에 대해 “몇 달 안에 결론을 내라”고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TPP를 통해 호주·베트남과 함께 말레이시아 등 기존 비동맹 세력들까지 끌어들인다는 데도 의미를 두고 동맹국 일본이 빠져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중국이 TPP를 또 하나의 대중(對中) 포위망으로 보는 이유다.

 일본으로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농업 시장의 개방은 가장 골치 아픈 문제다. 동일본 대지진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일본 동북지방을 비롯해 농촌 지역에서는 TPP 추진 자체를 정치권이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행위라며 반대하고 있다. 야마다 마사히코(山田正彦) 전 농림수산상 등 신중파가 여전히 적지 않아 민주당 안에서 ‘TPP를 강제로 추진하면 당이 다시 깨질 수도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