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세상보기] 관심법 과학 공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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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이 내년으로 다가왔다. 박세리나 땅콩 김미현이 골프 시합에 출전할 때는 우승을 목표로 하듯이, 기왕 월드컵에 출전하는 바에야 16강 진출 또는 그 이상 힘에 벅찬 목표를 세워야 한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특히 과학기술이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할 21세기에 우리는 우리 젊은이들이 과학분야에서 세계적 성과를 올리도록 성원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올해 여름에도 국제 수학.물리.화학.생물.환경.정보올림피아드에서 우리나라 고등학교 학생들이 전 세계의 젊은이들과 실력을 겨루게 된다. 7월 인도에서 개최될 화학올림피아드 대표들을 훈련시키고 인솔할 책임을 진 입장에서 과학공부의 요령을 소개한다. 사실은 모든 공부에 똑같이 적용되는 공부방법이다.

교과서건 일반 서적이건간에 책을 읽을 때는 일단 쓰여진 내용을 파악하는 데 매달리게 마련이다. 그런데 책은 제한된 지면 때문에 제한된 내용을 실을 수밖에 없고 따라서 어떤 내용에 관한 충분한 배경을 제공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암기를 하다 보면 공부의 재미를 맛볼 수 없다. 매사가 그렇지만 특히 과학의 내용은 배경을 알면 훨씬 이해가 쉽고 재미도 배가된다.

따라서 마치 궁예가 관심법으로 상대의 외면 속에 숨겨진 본심을 꿰뚫거나 말하지 않는 부분을 잃어내듯이 책의 한 줄 한 줄 사이, 소위 행간을 읽는 훈련은 공부에 재미를 붙여 남다른 성과를 올리는 첩경이다.

예를 들어보자. 모든 과학 교과서에는 2+ →2 식이 나온다. 수소 두 분자와 산소 한 분자가 반응해서 물분자 두개가 생긴다는 극히 기본적인 화학반응식이다. 대부분 교과서는 이 식과 관련해서 반응의 계수 맞추기라든지 수소 몇g과 반응하는 산소의 질량은 몇 g이라든지 식의 계산을 주로 다룬다.

그런데 관심법으로 를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이 식이 말하지 않고 있는 면을 파헤치면 하나씩 놀라운 비밀들이 드러난다. "네 이놈, 네 근본을 밝혀라" 하고 들여다보면 물은 1백50억년 전 빅뱅 우주에서 생성된 수소와 수소가 태어난 지 수십억년 후 어느 별의 내부에서 생성된 산소라는 두 갈래의 근본을 가진 것이 드러난다. 지구에서 생명을 가능하게 하고 우리 체중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물의 본질은 이처럼 심오한 데가 있는 것이다. 위의 식은 수소와 산소가 단순히 만나 반응하는 것으로 돼있다.

그렇지만 "너희들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만나 일을 꾸몄느냐□" 하고 사건의 전말을 들여다보면 뜨거운 별의 내부에서 생긴 산소가 초신성폭발이라는 극적인 별의 최후를 통해 우주공간으로 빠져나와 방황하다가, 우연인지 필연인지 알 수 없는 인연으로 팽창하는 우주를 채우고 있던 수소를 만나 물을 만든 내력을 읽어낼 수 있게 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지만 보는 만큼 아는 것이 관심법의 요체다. 과학공부의 관심법이 궁예의 관심법과 다른 점은 요즘 세상에는 인터넷에 좋은 정보가 깔려 있기 때문에 관심만 있으면 못 믿을 사람의 판단에 의존하는 대신 얼마든지 좋은 자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내년 대학입시부터는 면접비중이 높아진다니 쉬운 수능에서 한 문제라도 틀릴까봐 반복 연습에 시간을 투자하는 대신, 교사와 학생이 함께 행간을 읽으면서 사고의 훈련을 쌓아가는 교육이 시도되기를 기대해본다.

교과서의 내용은 주입이 가능하지만 행간의 내용을 파악하려면 문제를 제기하고 자료를 찾아보며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생각하는 과정에서 창의력이 생긴다. 창의력은 남보다 정답을 잘 하는 데 있지 않고, 남다른 질문을 던지고 남다른 접근방법을 제시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김희준 <서울대교수.분석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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