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멸 부른 중년여성들 그린 연극 화제

중앙일보

입력

부모자식이나 부부사이의 갈등은 드라마의 단골 소재로 이용돼 왔다.

철없는 엄마와 야무진 딸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마요네즈' 가 그랬듯이 과거 작품들의 공통점은 제 아무리 미워하고 상처를 주던 사이라도 마지막에는 서로 이해하고 화해하는 '훈훈한' 결말에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극단 여인극장의 '아름다운 여인의 작별' 과 극단 미학의 '당신, 안녕' 의 내용은 가히 파격적이다.

'아름다운…' 은 제목과 달리 증오가 기름처럼 끓어오르는 끔찍한 이야기다. 아일랜드의 한적한 시골마을 리네인에 단 둘이 살고 있는 늙은 엄마(김금지) 와 마흔살의 노처녀 딸(정경순) 의 파국을 그리고 있다.

자신에 대해 사사건건 간섭하고 반대하는 어머니를 증오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딸의 꿈은 오로지 '어머니로부터 해방돼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 .

어머니가 딸에게 보낸 남자친구의 청혼편지를 태우자 딸은 어머니를 죽이기에 이른다. 방법도 끓는 기름으로 손을 지지고, 이도 모자라 끓는 기름을 얼굴에 붓는다. 어머니를 땅에 묻고 돌아온 딸은 평소 어머니가 즐겨 앉던 흔들의자에 앉아 어머니와 닮아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극단적인 경우지만, 모녀간 애증의 문제를 통해 미묘한 여성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객석을 메운 관객의 70%이상이 중년여성이다. 연출자 강유정씨는 "극의 결말이 아름답진 않지만, 관객들이 아름다운 삶을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고민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고 말했다.

영국의 신세대 셰익스피어로 불리는 작가 마틴 맥도나는 1996년 발표한 이 작품으로 영국의 평론가협회상과 올리비에상.토니상 등을 휩쓸었다. 4월15일까지 제일화재 세실극장. 02-766-1482.

한편 정일성 연출의 '당신, 안녕' 은 한 중년부부의 비극적인 결말을 그린다.

'두 여자 두 남자' (92년) , '이혼의 조건' (94년) 에 이은 극작가 윤대성의 부부연극 3부작 종결편. 고부갈등, 남편의 여자, 자식들과의 갈등…. 멜로드라마의 도식대로 삶과 결혼.가족.사랑의 의미를 묻는다. "부부간의 정이라는 끈질긴 매듭은 자유보다 우선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주인공인 대학교수 독고영(이호재) 은 자살이란 극단적 방법으로 답한다.

2년전 '스토리시어터 뽕' 이후 전문 MC로만 활동해온 배유정이 아내 이여사역으로 오랜만에 연극무대에 선다. 4월 4일까지 문예회관 소극장. 02-745-9884.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