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피치] '영원한 해태맨' 김성한 감독의 감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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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단이야 광주에 남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해태라는 이름은 사라지겠죠. 생각만 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요즘에는 길 가다가 해태 제품을 보면 괜히 한번 더 쳐다보는 습관이 생겼어요. "

해태 김성한(43)감독의 말처럼 해태 타이거즈는 지금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모기업의 부도로 운영난에 빠진 지 이미 4년째다. 선동열.이종범 등 주축 선수들의 이적료로 어렵게 살림을 꾸려왔지만 링거주사는 바닥이 났다. 급기야 지난 15일 한국야구위원회(KBO)가 팀을 팔아주려고 나섰다. 해태 타이거즈가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고 팀의 주인이 바뀐 뒤 호남 연고를 유지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해태는 이제 열아홉살이지만 해태를 빼놓고 한국 프로야구를 말하기 어렵다. 해태가 있어 다른 팀은 '명가(名家)' 라는 수식어를 쓰지 못한다. 한국 시리즈에서 아홉 차례 우승하면서 그들은 국내 프로야구를 주도했고 수많은 스타 플레이어를 배출했다. 일본에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있고 미국에 뉴욕 양키스가 있다면 한국에는 해태 타이거즈가 있다.

해태가 그런 상징적인 팀이라면 '선수' 김성한은 어느 정도의 스타였던가. 그는 프로야구 첫 해인 1982년 다승 7위(10승).타격 10위(타율 0.305)에 동시에 올랐다. 선발 투수로 등판하지 않은 경기에서는 3루수로 뛰었고 팀이 급하면 구원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갔다. 홈런(13개)은 4위였고 방어율(2.89)은 6위였다. 비록 '스피드건도 제대로 없던 시절' 이라고 하지만 10승 투수와 3할 타자를 동시에 해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그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프로야구 출범 이래 지금까지 한번도 유니폼을 바꿔 입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회가 몇번 있었지만 떠나기 싫었어요. 왠지 이 팀을 떠나면 내가 다른 사람이 될 것 같았어요. "

김감독은 지난 수년 동안 다른 팀에서 지도자로의 영입 제의가 있었지만 모두 뿌리쳤다고 한다. 당시 팀이 어려울 때여서 앞날이 불안해 한편으로는 떠나고 싶었지만 약삭빠른 행동으로 비춰지는 게 싫었고 무엇보다 자신을 스타로 만들어준 해태를 등질 수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18년 동안 스승으로 모셨던 김응룡 감독이 지난 겨울 삼성으로 떠나면서 사령탑을 물려받았다.

"제 임기(3년)안에 옛 명성을 되찾을 겁니다. 더 이상 돈 때문에 선수단이 흔들리지만 않으면 자신있습니다. 그때 비록 해태 유니폼을 입고 있지 못하더라도 해태가 남겨준 강인함은 남아 있을 겁니다. "

영원한 해태 맨이기를 자청한 '감독 김성한' 이 해태 최후의 사령탑으로 남게 된 것은 극적이다.

전통의 붉은 상의와 검정색 하의.

올해 해태 선수들은 자랑스런 유니폼을 입는 최종 주자들이 될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의 경기에는 한층 숭고한 사명감이 깃들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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