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물낭비만큼 무서운 전파낭비

중앙일보

입력

지난 22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물의 날이었다. 창사 10주년을 맞은 SBS가 '물은 생명이다'라는 캠페인을 꾸준히 벌여 제1회 물 사랑 대상 (홍보교육부문)을 받았다.

'기쁨 주고 사랑 받는 방송'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방송사다운 처신이었다. 하루에 그치는 게 아니라 앞으로 10년 간 지속적으로 전개한다고 하니 상을 받을 만도 하다.

방송과 물은 여러 가지로 닮았다. 늘 가까이 있으니 귀한 줄을 모르고 산다. 수도꼭지를 틀면 나오는 게 물이고 리모컨을 누르면 쏟아져 나오는 게 방송이다. 물을 아껴야 한다. 방송 역시 마찬가지다. 전파를 낭비하다가는 재앙에 직면하게 된다.

수질오염은 21세기 인류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다. 이에 못지 않게 방송의 오염 역시 심각하다. SBS가 상을 받기 바로 전날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은 성명서 한 장을 발표했다. '쇼 무한탈출' 이라는 주말오락프로그램을 폐지하라는 내용이다. 방송을 시작한 지 불과 한 주밖에 안 된 시점이다.

"연예인들을 무리한 상황으로 몰아 가학적인 웃음을 짜내거나 상식에 벗어난 엽기적 내용을 내보내 시청자를 당혹하게 했다" 따라서 "건강한 방송 건강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자사의 방송지표와 달리 이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의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쪽에선 상을 타고 한쪽에선 비난을 받으니 균형을 이룬 셈이라고 여기는 건 아닐까. 두 얼굴의 TV는 곤란하다.

방송가에는 물에 관한 비유가 공공연하게 유통된다. 상대 프로그램이 물이 오르는 것 같으니 물 좀 먹여 보자라든가(물귀신 작전) 혹은 저편에서 먼저 물을 흐리니까 우리도 물불 가리지 말자 등등. 시민단체가 뭐라고 야단치면 시청자 반응도 덩달아 물 끓듯 한다.

일시적으로 물 끼얹은 듯 조신하던 방송사는 조금 잠잠해지길 기다렸다가 다시 물에 물 탄 듯하게 되는 게 작금의 사이클이다. SBS가 10년 간 지속적으로 캠페인을 편다는 건 대단한 계획이다.

시청자 단체 역시 전파의 오염을 막기 위해선 10년 아니 100년이라도 집요하게 감시하고 두들겨라. 물 좋은 곳만 찾던 시청자들도 이제 맹물 마시고 속차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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